우울증을 앓다 자살한 공무원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2013년 12월 서울고법이 ‘일 때문이었다면 업무상 재해가 맞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미 사망한 김모씨는 법정에서 진술을 할 수 없었지만 그의 심리를 분석한 ‘심리부검’ 감정서가 자리를 대신했다. 사법사상 처음이었던 심리부검이 ‘우울증 발병이 업무와 관련없다’던 1심 재판부의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9년 11월, 23년간 세무공무원으로 일했던 김모씨는 ‘내가 죽는 이유는 사무실의 업무과다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걸 확실히 밝혀둡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그의 부인은 2010년 유서를 근거로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보상금을 청구했으나 거절당했고 2011년 1월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업무과다가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아니다’라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었다. 심리부검을 통해 김씨의 우울증이 업무 스트레스 때문임을 밝혀낸 것이다.
한국에선 매해 1만4천여명의 사람들이 자살을 한다.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률이 28.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자살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한국에선 자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이 크다. 망자가 유서마저 남기지않고 떠나면 자살전 심리상태나 당시 주변 상황은 더욱 알기 어려워진다. 이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한 방법으로 고인의 심리를 분석하는 심리부검이 주목받고 있다.
신체부검이 사망사건 원인 규명을 위해 시신을 해부하거나 생화학적 방법으로 조사하는 것이라면, 심리부검은 타살인지 자살인지 규명되지 않은 경우 혹은 자살로 추정될 경우 그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자살자의 가족ㆍ친척ㆍ친구 등 지인들의 면접조사와 자살자의 의료기록 및 정신과 치료 기록 등을 분석해 자살 원인을 밝혀낸다.
선진국에서 재판 등에 많이 활용되는 심리부검이 우리나라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부산시가 전국 처음으로 일선 경찰서ㆍ정신건강증진센터와 공동으로 심리부검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는데 ‘정신과 치료 경험자, 40대 무직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 사람’이 자살 고위험군으로 나왔다. 이들을 대상으로 예방교육을 하면 자살률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자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심리부검사업 등을 통해 자살예방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