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 문제를 다룬 ‘카트’(감독 부지영)가 화제다. 영화는 지난달 13일 개봉 당시와는 달리 할리우드 영화들에 밀리긴 했지만 11월 30일 현재 누적관객 수 77만1천167명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카트’는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정규직 전환을 눈 앞에 둔 선희를 비롯해 싱글맘 혜미, 청소원 순례, 순박한 아줌마 옥순, 88만원 세대 미진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노조의 ‘노’자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들은 용기를 내 서로 힘을 합쳐 ‘우리 말을 들어봐달라’고,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싶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표현한 영화 ‘카트’는 현실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로 큰 공감을 자아냈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사회적 관심에 불을 댕긴 이 영화는,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와 절대적 갑(甲)인 대기업간 싸움이라는 민감한 주제에다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등 유명여배우들이 출연료까지 자진삭감해가며 출연해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줄줄이 관람하며 비정규직 문제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은 저임금ㆍ고용 불안 등으로 차별받는 근로자의 대명사로 통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가 급증하고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자 정부는 2007년 비정규직보호법을 마련했다. 기업들이 비정규직 자리를 마구 늘리고, 차별하는 걸 막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법이 시행된 지 7년이 지난 올해 비정규직 숫자는 607만7천명으로 2007년(570만3천명)보다 37만4천명 늘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임금 격차는 2008년 134만9천원에서 2013년 158만1천원으로 더 커졌다. 이 법은 비정규직 고용 안정에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편법만 양산했다. 2년 이상은 계약직을 쓰지말라는 취지의 법을 피하기 위해 몇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쪼개기 계약’까지 등장했다.
비정규직은 일용ㆍ임시ㆍ파견직을 전전하며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카트’가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며 경종을 울린 것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 기업이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