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 어느 단체와 동행해 남도의 내소사, 대흥사, 백련사 등 ‘가을빛 고운 산사 산책’을 다녀왔다. 강진 백련사에선 만덕산 오솔길을 따라 다산초당까지 걸었다. 온 몸으로 가을을 느끼며 걷는 그 길은 역시나 좋았다.
산길 끝자락에서 만난 다산초당(茶山艸堂)은 ‘다산학’으로 일컬어지는 정약용 학문의 결정체이자 요람이다. 유배 온 다산은 이 초당에서 10여년을 지내며 ‘목민심서’ 등 500여권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했다.
1958년 지역민으로 구성된 다산유적보존회가 무너진 초당을 복건해 사적 제107호로 지정받았다는데, 아쉬운 건 이름과는 달리 지붕이 기와로 돼있다. 조만간 짚을 얹어 본래의 초당 모습으로 복원할 예정이라고는 한다.
다산초당 지붕이 볏짚이 아닌 기와로 얹어진데는 매년 이엉을 엮은 지붕을 올리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여느 동네가 아닌 산 속에 건물이 있으니 말이다.
예전 초가 이엉잇기는 시골 동네의 연례행사였다. 해마다 추수가 끝나고 찬바람이 불 무렵이면 마을마다 초가지붕 교체작업인 이엉잇기가 품앗이 형태로 벌어졌다. 남자들은 새끼를 꼬며 이엉을 엮고, 여자들은 국수 삶고 막걸리를 준비해 마을잔치를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풍경은 주거문화 개선으로 초가집이 사라지면서 정겹고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돼버렸다. 40~50년전까지만 해도 볏짚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생활 도구였다. 볏짚을 엮어 지붕을 해 올리고, 멍석과 가마니를 짰다.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은 일상의 잡다한 물건들을 묶고 엮고 매달고 갈무리 하는데 쓰였다.
이제 이런 모습은 용인 민속촌이나 순천 낙안읍성, 아산 외암마을, 경주 양동마을 같은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진풍경이 됐다. 이들 민속마을에선 지난달 말부터 시작해 이달 말까지 이엉잇기 행사를 갖는다. 기존 지붕에서 썩은 짚들을 거둬내고, 깔끔하게 엮은 이엉을 새로 올린다. 썩은 볏짚단 속에선 흰 굼벵이들이 꾸물꾸물 거린다.
초가 이엉잇기가 사라지면서 기능 보유자 지정의 목소리가 높다. 이엉잇기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없어 기능 보유자로 지정해 놓지 않으면 명맥이 끊기는 건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짚문화가 사라지면서 굼벵이 또한 사라질 위기다. 일이 느리고 행동이 굼뜬 사람을 빗댄 ‘굼벵이처럼 한다’거나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 등의 속담도 잊혀져 갈 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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