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전통시대 사람들의 시간관념, 생산활동, 세시풍속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오래된 달력으로는 경진력 보통력(보물 1319호)과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이 사용했던 대통력(보물 160호), 음양력이 교체되던 대한제국기의 명시력(明時曆) 등을 꼽을 수 있다.
조선시대 달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농업정보다. 1579년에 간행돼 이듬해 사용된 경진년 대통력은 농사에 필요한 달(月)의 대소(大小)와 일진(日辰), 24절기의 입기시각(入氣時刻) 등이 꼼꼼하게 적혀 있다. 이보다 앞서 사용된 1597년 정유년 대통력은 류성룡의 글씨가 쓰여져 있어 ‘류성룡비방기입대통력’으로도 불린다.
1895년 고종은 요일제를 근간으로 하는 양력을 공포한다. 하지만 한동안 음력과 양력을 함께 쓰는 과도기가 이어진다.
아라비아 숫자가 나오는 근대식 달력은 1930년대에 들어서야 본격 보급됐다. 1931년 기독교 선교사가 한국인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림과 영문 설명을 담은 달력이 눈길을 끈다. 1960, 70년대에는 달력이 국가 정책의 홍보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런 달력의 변천사는 국립민속박물관이 2015년 2월 29일까지 전시하는 ‘달력, 시간의 자취’ 특별전을 통해 볼 수 있다.
디지털기기에 밀려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지만 달력 속엔 시대의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의 달력은 연말연시 소중한 선물이기도 했다. 근사한 그림이나 사진이 담긴 12장짜리 달력이나, 귀금속점에서 만들던 일력(日歷)은 가치를 더했다.
12장짜리는 종이가 좋아 교과서 덮개 등 쓸데가 많았고, 얇은 습자지로 만든 365장짜리 일력은 지질이 얇고 부드러워 화장지로 안성맞춤이었다. 먹고 살기 나아지면서 달력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거듭나 거실의 장식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젠 달력을 거는 곳이 그리 많지않다. 전통적인 벽걸이보다 탁상용 쪽으로 많이 바뀌었다. 젊은이들은 핸드폰 속 달력을 주로 이용한다.
2014년이 저물어가면서 마지막 달력 앞에 섰다. ‘12’라는 숫자를 보며 올 한 해 어떤이에겐 흐뭇함이, 또 어떤이에겐 아픔과 회한이 있었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점검하는데 달력만한 것이 없다. 2015년 새 달력을 받아 멋진 계획을 세워보자. 내년 연말엔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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