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발표된 미국 400대 부호 조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가 1위를 차지했다. 빌 게이츠는 총 재산 810억 달러, 우리돈 85조5천억원을 보유해 21년 연속 최대 부호로 조사됐다. 그는 기부도 1등이다. 2013년 빌 게이츠 부부는 26억5천만 달러(2조8천억원)를 기부했다.
이들이 지금까지 낸 기부금은 302억 달러(32조원)에 달한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67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해 2위에 올랐다. 버핏은 2013년 26억3천만 달러를 기부했고, 지금까지 기부 금액은 21조원이 넘는다.
미국의 부호들은 천문학적 재산으로 부러운 시선을 받는 동시에 통 큰 기부로 박수를 받고 있다. 미국의 기부문화는 부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확산돼 있다. 기부에 따른 세제 혜택이 후한 것이 기부문화 정착에 일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법적으로 인정되는 단체 등에 기부를 했을 경우 전액 또는 일정액을 공제해주는 기부금 소득공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해마다 연말정산 시즌이면 기부금 소득공제가 도입 취지와 달리 이상하게 변질돼 부작용을 낳고 있다. 나눔을 통한 기부문화 확산이 아니라 세금 혜택을 받기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
연말정산 때면 교회나 사찰에 ‘종교단체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한다. 종교단체에 기부하면 과세대상 소득의 10% 한도 내에서 그 금액에 15%를 곱해서 세액공제를 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기부금 영수증을 팔고 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실제 신도가 아닌 사람에게 금품을 받고 연말정산용 허위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 준 혐의로 경북 의성의 한 사찰 주지가 지난달 구속기소됐다. 이 사찰은 2011년 1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회사원 및 공무원 529명에게 6천424만원을 받고 20억4천700만원 상당의 허위 영수증 748매를 발급했다.
근로자들은 세금을 덜 내게 되고, 기부금이 적은 작은 종교단체들은 가외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종교단체는 소득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서 기부금 영수증 액수를 허위로 많이 적어줘도 외형이 늘어나 세금 부담이 커질 염려가 없다.
돈 몇 푼에 눈멀어 거짓 기부금 영수증을 팔고 사는 종교단체나 직장인 모두, 양심 불량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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