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및 유통업계엔 ‘열정 페이’란 말이 유행이다. 열정(熱情) 페이(payㆍ급여)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줄테니 너희의 열정으로 쥐꼬리만한 페이를 극복해보라’는 냉소적인 의미가 담겼다.
일할 기회를 줬다는 구실로 취업 준비생을 착취하는 행태를 꼬집고 있다. 주로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한 패션, 미용, 방송계에서 많이 나타났으나 일반 대기업과 공기업, 편의점 등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최근 의류업체 인턴과 패션디자이너 지망생 등으로 꾸려진 패션노조와 청년유니온이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를 ‘2014 청년 착취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디자인실이 야근수당을 포함해 수습은 월 10만원, 인턴은 30만원, 정직원은 110만원의 급여를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난해 패션노조는 유명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대다수의 의상실 인턴 급여가 최저임금은 커녕 교통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고발했다. 피팅모델비를 아끼기 위해 인턴들에게 44~55사이즈를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디자이너도 많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기업에서도 사원을 채용할 때 인턴 형태로 열정 페이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편의점 GS25의 열정 페이도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경력이나 스펙에 도움도 안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조차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GS25의 한 점주는 구인사이트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에 ‘돈 벌기 위해 편의점 근무(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열심히 하는 분은 그만큼 챙겨드리도록 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는 시급을 2014년 최저임금인 5천210원으로 제시했다. 게시글은 SNS 등을 통해 퍼지며 취업 준비생들의 공분을 샀다.
지난 8일에는 위메프가 정직원 채용을 빌미로 수습직원에게 2주간 정직원 수준의 영업을 시킨 뒤 2주 만에 전원 해고한 사실이 알려지며 청년들의 분노를 가중시켰다. 위메프는 하루 14시간가량 일한 수습직원들에게 해고 뒤 시급 3천원꼴인 일당 5만원을 지급했다고 한다.
열정 페이는 기성세대가 젊은층에 가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업계 관행이라며, 배움과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위는 범죄다. 젊은이들이 더 이상 열정이란 명분하에 청춘을 착취 당하지 않도록 당국은 고강도 근로 감독에 나서 불합리한 관행을 철퇴시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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