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개(犬) 영웅?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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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뉴욕 수사당국이 전직 소방관 8명을 기소했다. 전직 경찰 72명도 함께 넘겼다. 13년전 ‘9ㆍ11 테러’ 현장에 투입됐던 사람들이다. 죄명은 ‘장애급여 부당 수령 혐의’다. 테러 현장에서 얻은 장애를 속여 돈을 챙겼다. 멀쩡히 낚시 여행, 수상 스키를 즐기는 모습이 체증됐다. 의사와의 상담 때 해야 할 말과 행동까지 연습했다고 했다. 이렇게 챙긴 돈이 4천300억원이다. ▶9ㆍ11 폐허 앞에 선 부시 대통령 곁에 소방관이 있었다. 부시의 이 연출은 성공했고, 미국민은 그들을 ‘9ㆍ11 영웅’이라 불렀다. 위기의 미국 여론이 이들을 중심으로 한 데 모였다. 지금도 ‘그라운드 제로’ 한 모퉁이에는 산화한 소방대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런 영웅들이 저지른 예산 도둑질이었다. 수사를 담당한 사이러스 밴스 검사는 이들을 ‘뉴욕 사기꾼들(New york swindlers)’이라고 표현했다. 무리한 영웅 만들기가 빚어낸 참

담한 반전이다. ▶2003년 5월 13일, 경북 예천 민가에 전투기가 추락했다. 집은 불탔고 조종사는 순직했다. 언론은 “조종사가 민가 피해를 막기 위해 끝까지 조종간을 잡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2014년 7월17일, 광주시 장덕동 한 아파트에 소방 헬기가 추락했다. 조종사 등 탑승자 5명이 전원 순직했다. 이때도 언론은 “조종사들은 끝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안전한 곳을 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방송 어디에서도 ‘조종간’의 출처는 밝히지 않았다. 애초에 출처가 확인될 수 없는 거짓 영웅담이었다. ▶의정부 화재 직후, 인터넷 검색어에 ‘영웅 소방관’이 등장했다. 그중 한 명이 화마(火魔) 속에서 강아지를 구한 소방대원이다. SNS에서는 ‘화장실에서 떨고 있던 (강아지)녀석을 찾았습니다. 땀에 펑 젖은 소방관, 이분이 영웅이십니다’라는 소개글이 올랐다. 먼저 대피한 주민이 안타까워하자 몸을 던져 강아지를 구해냈다는 이야기다. 13명의 사람을 구한 또 다른 소방관 얘기보다 검색 수가 많았다. ▶사람 4명이 숨진 화재다. 그중엔 결혼을 두 달 앞뒀던 예비 신부도 있다. 다친 사람이 126명이고, 재산을 잃은 사람이 226명이다. 대낮에 난 불인데도 2시간 넘도록 탔다. 주민들은 초기 진압에 실패한 소방당국을 원망한다. 책임 여부를 떠나 이번 화재가 실패한 소방 작전의 예(例)로 기록될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 참담하고 실패한 소방 현장에서 생산된 ‘강아지 영웅담’이다. 영안실에서…병상에서…대피소에서 고통받고 있을 ‘사람’들이 이 ‘개(犬)’ 영웅담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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