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食口)가 뭐여, 같이 밥 먹는 입구멍이여.”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부하들과 밥상을 앞에 놓고 마주한 주인공 병두(조인성)의 얘기다.
밥상은 각자 바쁜 가족들을 한데 불러 모아 서로의 얘기를 꺼내놓게 하는 소통의 매개체이고, 가정이 사회의 기초 구성단위로 따뜻한 유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었다. 밥 짓는 냄새, 김이 피어오르는 주방 풍경은 편안하고 안락한 가정을 상징하는 기호 같은 것이었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식구(食口)’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점심은 물론 아침과 저녁 식사도 가족과 함께 못하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식구는 어딘가 어색한 느낌마저 든다.
보건복지부가 남녀 7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2013년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가족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사람의 비율은 46.1%로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아침 가족동반식사율은 지난 2005년 62.9%에서 2010년 54.7%, 2012년 51.3%로 계속 낮아지다 2013년에 50% 아래로 떨어졌다.
저녁 가족동반식사율도 2005년 76.0%, 2010년 68.0%에 이어 2013년 65.1%로 줄었다. 가족 구성원이 대개 학교나 직장에 있는 시간인 점심 때의 동반식사율은 14.4%로 가장 낮았다. 또 도시에 살수록 가족과 식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과 함께 식사하지 않는 이유를 따로 조사하진 않았으나 가족 구성원들의 외부 활동이 과거보다 활발해지고 혼자 사는 가구도 점점 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 현상은 유통가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정에서의 따뜻한 식사를 그리워하는 이들을 겨냥해 ‘집밥’을 내세운 상품이 속속 나오고 있고, 낯선 사람들과 모여 식사를 하는 ‘소셜 다이닝’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집 사는 가족끼리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마련해 ‘식구’의 의미를 되살리는 게 가족공동체 회복이다. 밥상머리 대화에선 구성원간 소통과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고,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인성도 살찌울 수 있다. 가족간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를 넘어선다.
현대화ㆍ도시화ㆍ산업화를 받아들이면서 가장 먼저 버린 것 가운데 하나인 식구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잃어버린 밥상’을 챙겨보도록 하자.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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