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박상학씨, 판사가 위법이랍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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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총재는 사사건건 남북대화를 반대하고…”.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공격했다. “이회창씨는 전쟁주의자입니까”. 한화갑 의원은 한발 더 나갔다. 보수에 대한 진보의 공격이었다. 현대 정치사에서 통일의 공학적 개념이 늘 이랬다. ‘통일’의 화두를 선점하는 쪽은 진보였다. 보수는 그런 진보에 의해 ‘반통일 세력’으로 몰렸다. 김대중ㆍ노무현 대통령은 통일 주의자, 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이명박은 반(反)통일주의자였다.

틀렸다. 진보 정권에 6ㆍ15 공동 선언이 있다면 보수 정권에도 7ㆍ4 남북공동 성명이 있다. 국정 공백의 위험을 무릅쓴 진보 대통령의 방북이 있었다면 청산가리를 품에 넣고 방북한 보수의 대리인도 있었다. 자고로 대한민국 모든 통치자에게 통일은 가장 매력적인 정치목표였다. 더구나 시대까지 변했다. 남한은 ‘선거에 의한 2세 시대’, 북한은 ‘족벌에 의한 3세 시대’다. 이제 통일은 특정 진영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국민’의 가치다.

그런데 이때의 ‘모든 국민’에 포함되지 않는 ‘국민’도 있는 듯하다. 그제(19일) 밤, 파주에서 대북전단 10만장을 날려보낸 사람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 업무 계획을 보고받던 날이다. 통일부,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의 통일 청사진이 보고되던 날이다. 이보다 나흘 앞선 15일에 통일부는 전단 살포 자제까지 요청했었다. 그런데도 전단은 살포됐다. ‘어젯밤에 날렸다’는 기자회견까지 했다. 청와대 회의가 묻혀버렸다.

탈북자 박상학씨-대북전단 주도자-의 택일(擇日)에는 고약한 기준이 있다. 남북 화해의 기미만 보이면 등장한다.

인천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 북한 선수단이 입장했다. 환영 분위기 속에 박씨가 파주에서 전단을 살포했다. 남북 관계는 곧바로 경색됐다. 보름쯤 지난 폐회식 전날, 뜻밖에 인사들이 나타났다. 김정은 체제의 실세라는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이었다. 남북간 2차 고위급 접촉 얘기까지 나왔다. 박씨는 이번에도 전단을 뿌렸다. 고위급 회담은커녕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기대가 컸던 인천 아시안 게임의 결론은 ‘남북관계 냉각’이었다.

한 두어 달 조용한 뒤 연초다. 박 대통령이 ‘통일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1위원장이 ‘최고위급 회담도 못 할 것 없다’고 답했다. 주식 시장에서 현대상선, 에머슨퍼시픽, 재영솔루텍 등이 상한가를 기록했다. 남북 경협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박씨가 또 등장했다.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번엔 정부가 나서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책임 있는 당국자가 나오라’며 버텼고 결국 또 전단을 뿌렸다.

재(滓) 뿌리기다. 아시안 게임에 재 뿌리기, 대통령 신년사에 재 뿌리기, 청와대 회의에 재 뿌리기다. 궁극적으로는 남북 화해 분위기에 재 뿌리기다. ‘자유 대한민국 표현의 자유’를 말하지만 그것도 의미 없다. 법원이 ‘대북전단 살포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신체가 급박한 위협에 놓이고, 이는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살포했다. 사법부에까지 뿌려 대는 재다.

그래서 박씨의 ‘통일관’이 궁금하다. 화해에 의한 평화통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남는 통일은 인민군에 의한 적화통일과 국군에 의한 북침 통일뿐이다. 김정은 사생활까지 폭로하는 박씨가 적화통일을 추구할 리는 만무고…. 결국 북침 통일-흡수통일을 포함하는-만 남는다. 박 대표의 행동에서 보여지는 통일은 북침통일이다. 남북 화해 때마다 풍선을 들고 나타나는 그의 행동이 극명하게 보여주는 통일관이다.

팍(R.E. Park)은 주변인(周邊人ㆍmarginal man)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둘 또는 그 이상의 갈등적·사회문화적 체계들 속에서 다양한 가치를 내면화시킴으로써 어느 한 가치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 혹시 박씨가 본인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변변한 직업이 없다. 그러니 생활도 어렵다. 북(北)도 싫지만 남(南)도 따뜻하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도 싫어하고 남한도 반기지 않은 전단 살포를 고집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알아야 할 일이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그를 주변인으로 몰지 않았다. 그 스스로 주변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혼자만 달려가는 것도 아니다. 멋 모르는 3만 탈북자까지 함께 몰려간다. ‘모든 국민’과 동떨어진 탈북자들이란 말, ‘평화통일’을 막아서는 탈북자들이란 말이 자꾸 나온다. 반공 장사, 멸공 장사…. 그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박씨가 그토록 입에 담는 ‘자유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김주완 판사가 ‘대북전단이 국민 생명을 위협한다’고 판결했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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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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