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광주 조선백자요지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기자페이지

‘용재총화’에는 ‘세종조부터 백자를 전용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세종 때부터 왕실에서 분청보다 백자를 애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왕실의 백자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왕실용 백자 가마인 분원 관요(官窯)가 경기도 광주에 설치됐다.

조선은 건국 초 전국의 가마를 조사ㆍ정비하고 도자기 번조를 맡는 중앙기관으로 사옹원(司饔院)을 뒀다. 세종 때는 광주지역에 사옹원의 분원을 둬 궁중에서 쓸 도자기 일체를 생산케 함으로써 지방관요였던 광주관요가 중앙기관으로 승격됐다. 사옹원은 궁중 내에서 왕에게 올리는 모든 진상품과 식사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궐내 식사에 소용되는 그릇을 제작하는 일도 맡았다.

백자는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생산되는데, 성종에서 중종 연간은 조선백자의 절정을 이룰 만큼 우수했다. 중기 광주의 중앙관요에서 생산된 백자 중에 발색이 아름다운 갑번(匣燔)백자가 늘어났다. 후기의 청화백자는 푸른빛이 감돌 만큼 순백색의 자태에 안정감이 있고 원만하며 선의 흐름이 유연해 기품이 넘쳤다.

 

광주 분원은 500여년 동안 왕실에 최상품의 백자를 상납하며 조선 도자기 생산의 최대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는 광주의 백토가 품질이 좋고 땔감이 풍부하기 때문이었다. 또 수도인 한양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한강과 그 지류를 이용해 원료와 자기 운반도 수월했다.

퇴촌면 일대와 중부면 번천리ㆍ오전리, 초월읍 무갑리 일대를 비롯해 광주엔 백자가마터로 밝혀진 곳이 300여 곳이나 된다. 광주 전역이 도요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백자 연구의 핵심이 되는 이곳 가마터들은 국가사적 제314호로 지정돼 있다.

경기도가 우리나라 백자문화의 산실인 광주 조선백자요지(朝鮮白磁窯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김흥식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광주 조선백자요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대응전략’ 연구보고서를 통해 “광주 조선백자요지는 조선시대 백자 도요지로서의 고고학적 유산이라는 유형적 가치와 조선백자 생산기술의 무형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했다.

관청이 사기제작을 위해 설치한 관요 운영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하며, 탁월한 보편적 가치 및 진정성ㆍ완전성 확보가 가능한 조선 도자사 연구에 가치 있는 문화자산이라는 것이다.

남한산성에 이어 광주 조선백자요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영광의 날을 기대해본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