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노인요양원의 비애(悲哀)

이용성 사회부장 ylees@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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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문-

사망일시 : 00년 00월 00일.

성명 : 김 * *.

주민번호 : 24**** - *******.

유품 통장 1개 14K 반지 1개.

“상기 물품을 공고일까지 찾아가지 않으면 본원 경비로 처리합니다”

얼마 전 지인의 할머니가 계신 노인 치매요양원을 찾았다가 우연히 게시판을 통해 본 내용이다. 공고문 내용을 추론하자면 요양원에서 사망한 고인의 시신을 후손들이 찾아가지 않아 법적 절차에 유품을 처리하거나 미처 유족들이 챙기지 못한 유품을 뒤늦게 알려주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노인복지법상 연락이 불가능한 입소자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 유류금품으로 장례를 치를 수 있으며, 장례비용 처리 이후 남은 유류금품에 대해선 민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한참을 우두커니 요양원 게시판을 보고 있자니 무엇인지 모를 울컥한 감정이 치밀었다. 물론 망자는 필자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분이다. 누구나 저승길로 향할 땐 빈손으로 간다지만 이승에서 구순(九旬)을 넘게 살다 가신 분의 유품이라고는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게다가 유족들이 찾아가지 않은 유품을 알려주는 공고문이 붙은 만큼 망자는 가족 하나 없이 쓸쓸히 장례를 치렀을 것으로 짐작해 봄직했기 때문이다.

너무 부정적인 망상일 수도 있지만 만약에 통장에 넉넉한 액수가 들었거나 금덩어리 값어치의 유산이나 유품이 나왔다면 과연 이런 공고문이 붙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분명 요양원에는 망자의 비상연락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유족들 중 누군가는 사망사실을 알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인은 외면 아닌 외면 속에 다시는 못 올 머나먼 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도내 노인 치매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경기지역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각각 1천340개소와 276개소에 이르고 있다. 이들 요양원 중에는 지금도 위 내용과 같은 공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을 것이다.

훗날 공고문의 대상자가 우리 부모 형제이거나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씁쓸한 맘을 감출 수가 없는 대목이다. 정이 메마른 삭막한 사회를 대변하듯 가족의미가 상실된 현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노인요양원의 비애(悲哀)가 아닐까 싶다.

이용성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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