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칼럼] “패션쇼는 나에게 소설이자 영화이자 운명이다”

매년 9월과 2월 뉴욕으로부터 시작해 런던, 밀라노, 파리로 이어지는 패션쇼를 세계 4대 컬렉션이라 부른다. 그리고 파리 컬렉션이 끝나는 동시에 서울, 도쿄, 베이징, 모스크바 등 세계 각 도시에서 컬렉션이 열린다. 이제 컬렉션은 세계 패션이 소통하는 공간이 되었다.

1998년 1월, 나는 처음으로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로 떠났다. 그로부터 5년 뒤 파리 컬렉션에 참가하기 시작해 12년 동안 1년에 네 번씩 파리를 찾았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 지원 프로젝트 ‘컨셉 코리아’를 통해 뉴욕 컬렉션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어 파리에서 뉴욕으로 컬렉션 장소를 옮긴지 세 시즌째다.

작년 11월부터 뉴욕 직영 매장을 준비하며 2015 가을/겨울 뉴욕 컬렉션도 함께 준비했다. 이번 출장에서 이상봉 뉴욕 매장을 처음 본 감정은 85년도에 명동에 처음 매장을 오픈했을 때 느꼈던 감정 그 이상이었다. 처음 고객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설렘과 두려움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나 자신도 놀라웠다.

지난 2월 11일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뉴욕 매장 오프닝 파티장으로 향했다.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많은 패션 피플들이 방문해 그들과 샴페인을 마시면서 축하 인사를 받았다. 이튿날인 12일부터는 2일간의 스타일링이 이어졌고, 이틀 동안 모델에게 수많은 옷을 입혀가면서 컬렉션을 완성해 나갔다. 이틀 뒤부터는 모델 오디션을 보았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수많은 미인들은 평균키가 178-180㎝였다, 힐을 신으면 2미터에 가까운 늘씬한 모델 앞에서, 작은 키의 디자이너들은 발뒤꿈치를 들고 옷매무새를 만진다. 오디션장에서는 그들이 정상이고 다른 이들은 난쟁이가 되는 이상한 풍경이 벌어진다.

패션쇼 하루 전 날 SNS를 통해 평소에 친분이 있었던 홍석천이 뉴욕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인 타운에 있는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군침이 도는 게장이 서비스로 나오니 손이 가는 건 당연지사. 그런데 처음 무는 순간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떨어졌다. 윗니 가운데가 허전했다. 너무 놀라 바닥을 뒤지다가 이가 부러졌다고 말하니 걱정과 염려로 주변이 싸늘해짐을 느꼈다.

당장 내일이 패션쇼였기 때문에 쇼를 앞두고 이게 무슨 시련인가 싶어 마음이 무거웠지만 차라리 액땜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꿔야만 했다. 이가 부러진 내 얼굴은 코미디언을 보는 듯했고, 가운데 텅 빈 이빨에는 뉴욕 추운 겨울바람이 파고드는 것 같았다.

다행히 일행 중 의사가 있어 치과 의사를 소개받아 다음 날 아침 패션쇼장으로 가는 대신 치과로 향했다. 약 한 시간 동안 무서운 드릴 소리를 들으며 눈을 질끈 감은 채 버텼다. 치료를 마치고 쇼 장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렸다. 지금까지 200번 가까운 패션쇼에서 느꼈던 긴장감이 무색할 정도로 긴장이 되지 않았다.

헤어와 메이크업, 음악, 프로덕션 등 패션쇼를 준비하기 전 수많은 사람과 미팅을 하고 그들의 노력으로 패션쇼가 완성된다. 이번 패션쇼는 ‘묵향’이라는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곽선경 작가와 먹물이 꽃처럼 번져나가는 무대를 꾸몄다.

이번 패션쇼도 무사히 끝났다. 패션쇼의 10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10분의 시간은 내가 준비한 몇 달 간의 시간만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순간에 끝났는지 모를 정도로 짧게 느껴진다. 전쟁 같던 쇼가 끝나고 백스테이지에는 축하 인사를 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늘 패션쇼를 준비해 마지막으로 무사히 끝났을 때 느끼는 짜릿한 피날레 때문에 아직도 패션쇼를 계속하는지 모른다. 나는 오늘도 감사한다.

나는 늘 왜 파리와 뉴욕, 이 낯선 도시에서 패션쇼를 하는가에 대해 나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무속인의 몸짓이나 거룩한 종교 제례처럼 단순한 즐거움이 아닌 운명적인 의식이라는 점이다. 패션쇼는 내가 꿈꾸는 소설이자 영화가 되고 춤이 된다. 디자이너 이상봉에게 패션은 곧 삶이고 인생이다. 그래서 패션쇼는 늘 현재 진행형의 운명적 의식이다.

이상봉 패션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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