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이연섭 논설위원 yslee@ekgib.com
기자페이지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향년 91세를 일기로 23일 새벽 타계했다. 싱가포르 국민은 물론 세계의 지도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는 역사의 진정한 거인, 현대 싱가포르의 아버지, 아시아의 위대한 전략가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부(國父)이자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ㆍ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해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 시켰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그의 나이 35세때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이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하던 1990년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다. 세계경제포럼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에 비판과 논란도 있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있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그의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 동원이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는 없었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재임한 고 전 총리가 물러난 후 리콴유의 큰 아들 리셴룽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정치ㆍ행정 분야의 요직을 거치며 지도자 교육을 받아 싱가포르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국민들이 열광하고 세계 지도자들이 존경하는 리콴유를 보며, 우리에겐 왜 그런 지도자가 없을까 생각해 본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