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그날 그 대학생은…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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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버스가 갑자기 섰다. 슬리퍼 차림의 기사가 뒤로 갔다. 방금 승차한 대학생 앞에 섰다. “너 방금 (하차)카드 찍었지”. 승객들의 눈이 학생을 향했다. “얌통머리 없이 카드 찍었잖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학생은 말이 없었다. “커피는 만원짜리 처먹는 것들이, 싸가지 없이 버스비는 아끼려고”. 승차와 동시에 슬며시 하차 결제를 한 모양이다. 곧 버스는 출발했지만 학생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검은 안경에 여드름이 많았다. 잘 차려입은 외모도 아니었다. 속임수를 쓰기엔 너무도 순수해 보였다. ‘만원짜리 커피를 처먹을’ 여유로움도 없어 보였다. 어쩌면 정말 300원-거리 환산 할증요금-을 아껴야 할 사정이 있었는지 모른다. 버스는 30여분만에 수원에 도착했다. 학생도 수원까지 왔다. 그 30분, 버스 안 승객 누구도 학생을 쳐다보지 않았다. 을지로 정차장, 검은 색 안경의 학생, 마른 체격의 버스 기사, 빨간색 광역 버스…. 당사자들에겐 지금도 남아 있을 기억이다. ▶광역 버스 요금은 2100원(카드 2,000원)이다. 30㎞를 초과하면 5㎞에 100원씩 추가된다. 경기~서울 간 거리를 50㎞로 본다면 2500원(카드 2,400원)이다. 왕복이 필요하니 하루 5000원(4,800원)이다. 서울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기본운임은 1,050원이다. 10㎞부터 5㎞에 100원씩 추가된다. 평균 1,100원이라고 치면 이것도 하루 2,200원이다. 통학하는 대학생이 부담할 교통비는 하루 7,000원 내외다. 한 달(25일 기준) 17만5000원이다. ▶금감원이 대학생들의 용돈을 조사했다. 한 달 32만4000원이었다. 여기엔 스스로 벌어 충당하는 아르바이트 소득까지 포함된다. 무조건 부담해야 할 교통비가 17만5000원이다. 나머지 14만9000원으로 밥 먹고, 책 사야 한다. ‘만원짜리 커피를 처먹을’ 여유란 없다. 그런 학생들에게 대중교통 비용은 너무 비싸다. 많은 학생들이 300~400원이라도 아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수많은 대학생이 경기도와 서울을 통학한다. 그보다 몇 배 많은 직장인이 경기도와 서울을 통근한다. 이들에겐 통학이 생존이고, 통근이 생업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통학 복지도, 통근 복지도 없다.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급식을 무료로 주면서 통학 비용은 도와주지 않는다. 무상복지가 정의(正義)고 평등(平等)이라고 외치면서 통근 복지는 나 몰라라다. 그러는 사이 200원 아끼려던 대학생들이 씻을 수 없는 망신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경기도가 요금을 인상해 버스 회사를 돕겠다고 한다. 잘못된 나라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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