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사고로 전신이 마비돼 감옥같은 생활을 하는 천재 마술사 이튼이 있다. 그의 곁엔 12년간 한결같이 간호해주는 소피아가 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장애를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라디오 DJ로 제2의 삶을 살아가지만 힘겹다.
남의 손에 모든 걸 맡긴 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고통스럽다. 이도 다른 사람이 닦아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준다. 콧등에 파리가 앉아 간질거려도 쫓을 수가 없다. 머리를 흔들어보고 입으로 불어 보지만 꼼짝 않는다.
그는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친구인 변호사를 불러 법원에 안락사를 청원(請願)한다. 사랑해서 보낼 수 없는 사람,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는 사람. 과연 어떤 게 옳은 것일까.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인도 영화 ‘청원’의 줄거리다. 감동 깊게 봤던 기억이 새롭다. 이 영화에서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유럽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프랑스 의회가 사실상 안락사를 허용하는 ‘깊은 잠(deep sleep bill)’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고로 뇌를 다친 뒤 7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뱅상 랑베르 씨(39). 부인이 남편의 안락사를 허용해달라며 프랑스 최고 행정 재판소에 소를 제기하면서 안락사가 프랑스의 핫 이슈로 급부상했다. 프랑스 법원은 안락사를 허용하는 이례적인 판결을 했고, 이어 프랑스 하원이 ‘깊은 잠’ 법안을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의사가 진정제를 투여하면서 음식과 수분 공급을 중단해 수면 상태에서 생을 마감케 하는 것으로, 주사를 맞고 바로 죽는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조건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여야 하고 본인이 요구해야 한다. 병이나 사고로 의사 표현이 어려울 경우에도 사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면 유효하다.
새로운 법은 프랑스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상황을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보수 종교단체 등은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지만, 진보 단체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처럼 아예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도 고통 없이 존엄하게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됐다. 삶의 가치와 행복을 선택할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는 것 아닐까.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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