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저(低) 신뢰 사회

최원재 정치부 차장 chwj7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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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 기간 모처럼 텔레비전을 보는데 모 방송국에서 ‘선진국의 필수조건’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방송에서 경제가 성장해도 ‘이것’이 없다면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물건을 사고 팔 때, 금융 거래를 할 때, 기업 투자를 할 때, 공공 정책을 펼칠 때 ‘이것’이 필요하단다. 이 정도 나오면 ‘이것’이 무엇인지는 대부분 눈치 챘을 거다.

이것은 신뢰다. 한 개인이 가지는 ‘신뢰’의 범위는 가족, 사회, 기업, 국가로 나뉜다. 가족 혈연 사이에만 신뢰가 존재하면 저(低) 신뢰 사회이고, 혈연을 넘어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유하면 고(高) 신뢰 사회로 분류된다.

미국의 미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지난 1995년 규정한 저(低) 신뢰 사회는 중국, 이탈리아, 프랑스, 한국이었다. 20여년이 지난 2014년 영국 레가툼 연구소가 142개국을 대상으로 한 사회자본 지수조사에서 한국은 69위를 차지했다.

1위는 노르웨이, 2위 뉴질랜드, 3위 덴마크 순이다. 사회 자본지수 순위는 ‘최근 타인을 도운 적이 있는가’, ‘대다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라는 질문에 고(高) 신뢰 사회로 분류된 노르웨이의 경우 74.2%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한국은 25.8%만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한국 사회는 왜 서로를 믿지 못하는 것인가.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인, 언론, 직장 동료, 이웃 심지어 가족까지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신뢰가 사라진 사회는 개인, 사회 갈등이 증가하고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게 되면서 사회적 비용이 크게 발생하게 된단다. 후쿠야마는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신뢰의 차이라고 했다. ‘이것(신뢰)’이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는 이유란다.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불신의 벽이 무너지길 바란다. 국민이 정부를 믿고, 유권자가 정치인을, 야당이 여당을, 남한이 북한을, 옆집에 사는 내 이웃을 믿는 고(高) 신뢰 사회가 이뤄져 하루빨리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대한민국이 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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