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아버지 뭐 하시냐고?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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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박진영의 신곡 ‘어머니가 누구니’가 폭발적 인기다. 허리 24, 힙 34인치 여자에 대한 예찬(?)을 담은 밝고 경쾌한 곡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대놓고 ‘엄마가 누구냐’고 묻기 어려워질 것 같다.

‘니 아버지 뭐 하시노?’ 영화 ‘친구’에서 주인공 담임 선생(김광규 분)의 발언으로 유명해진 말이다. 이 말을 미혼모나 이혼모 자녀가 듣는다면 어떨까.

우리는 개인 신상에 대해 자주 묻는다. ‘아이는 몇이냐’ ‘결혼은 했냐’ ‘아버지는 뭐 하시냐’고. 하지만 무심코 내뱉는 이런 말들은 때론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하는 습관적인 행동과 오랜 관습에 따라 내려온 조직 내 제도가 불합리한 차별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결혼하지 않고 임신ㆍ출산한 미혼모, 혼자 살며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동거하는 가구 등에 대한 사회적 차별 금지와 구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가칭 ‘비혼ㆍ동거가정 차별금지법’이다. 기업이나 학교에서 혼인이나 가족상황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피해자를 구제할 책임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도록 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법이 국회를 통과하면 기업은 입사서류에 지원자의 결혼 여부, 부모ㆍ배우자ㆍ자녀 유무와 가족의 인적사항을 물을 수 없게 된다. 어린이집과 각급 학교도 입학 서류에 가족사항 기재를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비혼가정의 자녀 또는 ‘싱글맘’이라는 이유로 취업이나 교육 기회를 얻는데 부당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조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고용ㆍ교육ㆍ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비혼가정 자녀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차별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앞서 정부는 올해부터 공공기관에 도입하는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기반 채용에서 기업들이 관행처럼 물어온 신장, 몸무게, 결혼 여부, 가족관계 등을 입사서류와 면접에서 묻지 않도록 했다.

한국 사회는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부모의 지위나 재산에 따라 그 자녀를 차별대우 하려는 경향이 심한 편이다. 싱글맘이나 이들의 자녀들은 경제 형편이 어려운데다 알게 모르게 불리한 대우를 받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별금지법 추진은 사회적 약자의 기본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다. 다만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비혼가정이 늘어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기긴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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