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다이옥신 선거였다. 보름 전 등장해 정치의 모든 것을 바꿨다. 야당인 녹색당과 우파ㆍ극우파 정당이 의석을 늘렸다. 기독사회당과 사회당 등 4개 연정 여당은 참패했다. 여론조사의 29%가 ‘다이옥신 때문에 지지를 바꿨다’고 답했다. 물론 집권 여당에서 야당으로의 지지 변화다. 연정의 중심인 기독사회당은 그렇게 40년여만에 권력을 잃었다. 1999년 6월 13일 치러진 벨기에 총선이다.
전 유럽에 충격을 준 결과였다. 그도 그럴게, 58년부터 집권해온 기독사회당이었다. 한 세기를 채울 듯한 기세였다. 90년대 들면서 부패의 악취가 곳곳에서 진동했다. 거물 정치인들이 군납비리에 연루됐다. 어린이 유괴 살해 사건이 발생했고, 유괴 살해범이 탈옥했다. 국민의 불만은 커져갔다. 그런데도 기독사회당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랬던 권력이 보름 만에 무너졌다. 그게 다이옥신이다.
적어도 그 즈음부터 다이옥신은 가장 매력적인 정치수단이 됐다. 16년이 흐른 2015년, 그 다이옥신 정치가 대한민국의 경기도 수원에서 부활했다. 화성시에 설치될 광역 화장장 문제다. 다이옥신이 나올거란 얘기에 서수원권이 발칵 뒤집혔다. 험악한 구호가 적힌 휘장막이 거리를 덮었다. 생업을 포기한 주민들이 시위현장으로 달려갔다. 여기까지는 16년 전 벨기에 다이옥신 정치와 같다.
차이는 공포의 실체다. 벨기에 다이옥신은 입증된 공포였다. 선거 10일 전 브뤼셀 주재 한국 농무관이 공문을 받았다. 벨기에 정부가 보낸 전문이었다. ‘벨기에산 닭과 계란에서 ㎏당 200~700 피코그램의 다이옥신이 검출됐다’ ‘벨기에 1만3천 축산 농가 중 5백여 농가에서 확인됐다’ ‘기준치에 40~140배에 해당하는 검출양이다’. 벨기에 정부가 인정한 공포였다. 이 증거가 정치를 뒤집었다.
화성 화장장에는 이게 없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시설이다. 다이옥신 측정 결과가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찜찜해 하자 경기개발연구원이 인근 화장장을 조사했다. 수원 연화장과 용인 평온의 숲이다. 연화장 0.134ng-TEQS㎡, 평온의 숲 0.081ng-TEQS㎡였다. 기준치는 5.0ng-TEQS㎡다. 담배 연기 속 농도보다도 22배나 낮다. 적어도 지금까지 이 결과를 뒤집을만한 과학적 수치는 없다.
결국, 정치가 만든 과한 혼란이다. 금방이라도 다이옥신에 뒤덮일 것처럼 선동했다.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선동은 계속됐다. 다이옥신 얘기는 슬그머니 쪼그라들었다. 대신 입지절차(立地節次)가 전면에 등장했다. 무책임 정치가 늘 이랬다. 선동부터 한다. 결론이 바뀌어도 반성하지 않는다. 또 다른 트집거리로 물고 들어간다. 그런 무책임 정치가 지금의 화장장 시위 연단을 장악하고 있다.
나쁜 정치다. 서수원권이라서 특히 나쁘다. 서수원 주민에겐 화장장보다 심각한 비행장이 있다. 화장장 다이옥신은 확인되지 않은 피해다. 하지만, 비행장 굉음은 판결로 증명된 피해다. 화장장 논란은 수개월짜리 현안이다. 하지만, 비행장 논란은 50년짜리 현안이다. 그 비행장의 이전이 모처럼 논의되고 있다. 그러자면 신공항 부지가 필요한데, 군(軍)은 “경기 남부로 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게 되겠는가. 지금의 서수원 주민이 쫓아 낼 애물단지를 어느 지역 주민이 받아주겠는가. 화성시 관계자는 아예 못을 박았다. “광역 화장장 시설이 수원시 경계에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발목을 잡는데 수원시 비행장을 화성시가 받아줄 이유가 없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무책임하게 선동하면 안 되는 거였다. 화장장 설치보다 비행장 이전이 절박함을 얘기했어야 했다. 다이옥신 측정치보다 비행기 굉음이 고통이라는 걸 설명했어야 했다. 이 중요한 판단의 여유를 잃어버렸다. 정치인들이 겁주고 흥분시키면서 다 빼앗아 버렸다. 다이옥신 정치(政治)가 서수원권을 선동하기 시작한 몇 달 전, 그때부터 많은 이들이 이런 말을 했다.
“화장장 가지고 저러면 비행장을 못 옮길 텐데….”
오늘도 서수원에서는 시위가 이어질 것이다. 정치선동과 주민불안이 맞물려 파국으로 치달을 것이다. 득(得)과 실(失)을 따져보라는 칼럼쯤은 갈가리 찢겨 나갈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1년짜리 정치가 100년짜리 미래를 망치고 있다.
[이슈&토크 참여하기 = 증명 안 된 다이옥신, 증명된 비행기 굉음]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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