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에센의 촐페어라인 탄광엔 1847년부터 1986년까지 세계 최대 탄광시설이 자리했다. 촐페어라인 산업단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이 단시일에 공업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른바 ‘라인강의 기적’이 일어났던 루르 공업지대의 중심에 있었다. 폐광 이후 정부 노력으로 문화와 디자인의 중심으로 변해 지역 명물이 됐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독일 정부는 문화유산에 등재하면서 이 탄광이 세계대전 중 강제노역에 이용됐음을 시인했고, 추모시설을 건립하는 등 반성과 사죄 노력을 기울였다. 실제 촐페어라인 내 박물관에는 나치 체제하 유대인 강제노역과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독일 최대 철강회사인 크루프는 전후인 1959년에 이어 1999년 유대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거액을 보상했다.
일본이 ‘메이지(明治) 산업혁명유산’이라며 23개 근대산업시설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23개 시설 중에는 나가사키(長崎) 조선소와 ‘군함도’라고 일컬어지는 하시마(端島) 탄광 등 조선인 5만8천여명이 강제노동을 한 현장 7곳이 포함돼 있다.
하시마 탄광은 1800년대 후반에 지어진 근대산업시설이며 큰 전쟁 중 강제노역을 동원했다는 점이 촐페어라인 탄광과 흡사하다. 하지만 전후 독일이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며 강제노동 희생자들에게 보상을 한데 반해 일본은 반성은커녕 이를 은폐하려 하고 있다. 일본은 하시마 등의 산업시설이 강제징용에 활용된 사실이 공개될까봐 등재 신청서에 세계문화유산 지정 시기를 1850∼1910년으로 제한했다.
한반도 침탈과 태평양전쟁 시기에 이 시설이 가장 활발하게 이용됐음에도 1910년까지로 지정 시기를 제한한 것은 꼼수이자 비열한 짓이다. 메이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에 올리려면 이런 시설이 근대화에 기여한 역사와 함께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전쟁 물자를 만들던 기지였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일본 내에서도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에 편협함이 느껴진다며 부정적 역사를 감추지 말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도 일본 측에 조선인 징용 사실 등 전체 역사를 담을 것을 요구했다. 일본은 강제노동 사실을 외면한 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은 역사 왜곡이자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보호하는 세계유산협약의 정신에도 어긋남을 명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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