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TV드라마로서는 보기 드문 시청률을 올린 게 ‘미생’이었다. ‘장그래’로 더 알려진 ‘미생’은 마침내 국회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를 위한 소위 ‘장그래 법’이 추진될 만큼 국민적 공감대도 컸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성공한 이유는 주인공 ‘장그래’역의 임시완에 못지않게 충혈된 눈과 거친 모습의 영업3팀장 ‘오상식’역의 이성민 등 주연 같은 조연들의 연기력이었다고 전문가들은 평한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A급 조연을 캐스팅해야 한다. 역시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조연이면서 주연 같은 오달수 효과가 컸다고 평한다. 심지어 오달수만 들어가면 그 영화는 성공한다는 말이 떠돌 정도다.
누구보다 조연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던 사람으로 삼성그룹 창업자 故 이병철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장이 처음 TBC(동양방송)을 세웠을 때 시청률을 올리는 비법으로 A급 탤런트를 드라마의 조연으로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강부자, 박노식 등이 그때에 인기몰이를 했던 주연급 조연들이었다. 이병철 회장이 인기 드라마를 제작하듯 삼성의 조직도 그렇게 탄탄하게 다져진 데는 주연급 인물들의 조연 역할이 컸다.
정치도 조연배우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야말로 김종필(JP)를 비롯 박태준, 남덕우 등 많은 주연급 조연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그의 집념인 산업화의 꿈을 밀고 나갔다.
전두환 전 대통령만 해도 정통성 없는 자신의 권력을 조연들의 연기로 메꾸어 나갔고 특히 아웅산테러 때 숨진 김재익 경제수석 같은 이는 ‘경제 대통령’ 소리를 들어가며 성장과 물가를 균형있게 잘 이끌었다. 김대중(DJ) 정부 때는 정권 출범과 함께 몰아닥친 IMF 위기를 임창열 경제부총리를 주연급 조연으로 내세워 조기에 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주연급 조연이 없어 정치판 드라마가 재미없다. 노무현 정부의 ‘조연’하면 ‘시끄러운 사람’들이 떠오르고 MB정부에서 ‘조연’하면 MB 대통령의 형 이상득? 왕차관이라는 박영준? 호위무사만 있지 A급 조연배우가 없다. 그러면 지금 정부에서 드라마를 살리는 조연자가 있을까? 역시 떠오르는 얼굴이 없다.
조연자 역할을 해야 할 국무총리의 계속된 인선 실패, 낙마가 그렇고, 북한문제는 말할 것 없고, 대일관계, 대미관계를 비롯해 외교안보 문제를 풀어가는 A급 조연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키신저 前 국무장관이야말로 A급 조연배우다. 경제분야는 더 말할 것 없다. 무대에는 대통령만 있고 몸을 던지는 A급 조연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역시 친노비노간 내홍을 보면 A급 조연배우의 기근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친노의 정청래 최고위원은 문재인 대표를 살리는 A급 조연배우가 아니라 막장 드라마의 ‘호위무사’로 악역만 했다. 그래서 친노 진영에 섰던 인사들 입에서 친노에 대해 ‘노무현 정신은 없고 ’완장‘만 남았다’고 개탄했고 ‘빽바지’대 ‘런닝구’ 싸움이니 하는 조잡한 단어들까지 난무했다.
국회는 곧 황교안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를 실시할 계획이다. 여러 가지 검증이 뜨겁게 전개될 전망이지만 호위무사형 총리인지, A급 조연자 총리인지 검증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세종시에 비어있는 총리 관저도 그런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변평섭 前 세종시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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