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병원 공개 금지-왜?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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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AIDSㆍ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는 80ㆍ90년대 언어였다. 세계적 스타들의 감염과 죽음이 공포를 키웠다. 세기의 미남 배우 록 허드슨이 1985년 숨졌다. 그룹 퀸(Queen)의 싱어 프레디 머큐리도 1991년 숨졌다. 프레디가 사망 하루 전 밝힌 에이즈 고백에 팬들이 경악했다. 대한민국에 에이즈 공포가 상륙한 것도 그때다. 확인되지 않는 감염 경로에 모두가 모두를 경계하는 의료 불신의 사회가 됐다. ▶필자가 동문(同門) 친구의 감염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수원 모 병원 마취과장이었던 또 다른 친구로부터였다. ‘○○가 에이즈다. △△병원에서 확진돼 보건소로 넘겨졌다.’ 권선 보건소장과는 친분이 있었다. 기자와의 대화를 즐기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그때만은 달랐다. “환자 유무도, 병원 이름도 확인해 줄 수 없다. 그러면 나 잘린다.” 결국 기사는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모든 걸 생략한 채 나갔다. 며칠 뒤 마취과장은 병원을 그만두었고, 몇 달 뒤 감염된 친구는 숨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문이 있다. 환자 신상을 비공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환자 자신의 인권을 위한 제도다. 그러나 병원의 경우는 다르다. 일반 국민은 에이즈 환자가 입원했던 병원을 알고 싶어한다. 그런 병원을 찾지 않을 권리도 있다. 이에 반해 병원은 환자 입원 사실을 숨기고 싶어한다. 경영상 타격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두 개의 권리 가운데 국가는 병원 손을 들고 있다. 어떠한 경우도 병원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지금 그 문제가 또 불거지고 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공포가 휩쓸고 있다. 어제(1일) 1명이 숨졌고, 오늘 새벽 또 1명이 숨졌다. 특정 병원에서는 15명의 환자가 집중 발생했다. 그런데 기사 어디에도 그 병원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처음 입원한 병원에서 이송되어 또 다른 병원에서 치료받던 환자가…’라는 식이다. 물론 당국은 알고 있다. 기자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밝히지 못한다. 국민만 모르게 하라는 것이다. ▶90년대 괴담이 있었다. “경기도 ○○골에 에이즈가 창궐했다” “숨진 정치인의 병명이 에이즈였다”. 당국은 침묵했고 괴담은 커져갔다. 2015년 메르스 괴담이 나돌고 있다. “서울 대형 병원이 폐업했다” “◇◇병원에서 환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이번에도 당국은 침묵하고 있다. 근거는 90년대와 같다. ‘절대로 병원 이름을 밝혀선 안 된다’. 이제 바뀔 때가 됐다. 국민의 권리와 의료계 이익이 절충하는 합리적 제도로 바뀔 때가 됐다. ‘무조건 공개’도 옳지 않고 ‘무조건 비공개’도 옳지 않다. 이번 메르스 사태가 우리 사회와 의료계에 던진 또 하나의 숙제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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