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版 징비록을 경계하며-
“건국 초기에는 각도의 군사들을 다 진관(鎭管)에 나누어 붙여서, 사변이 생기면 진관에서는 그 소속된 고을을 통솔하여 물고기 비늘처럼 차례로 정돈하고 주장(主將)의 호령을 기다렸습니다…(지금의 제승방략 체제는) 서로 연결이 잘 되지 않으므로, 장수가 없는 군사들로 하여금 먼저 들판 가운데 모여 장수 오기를 천리 밖에서 기다리게 하다가, 장수가 제때에 오지 않고 적의 선봉이 가까워지면 군사들이 마음속으로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니, 이는 반드시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유성룡의 건의였다. 제승방략체제에서 진관체제로의 변경이다. 하지만, 선조는 받지 않았다. ‘지금껏’ 탈 없었다는 이유였다. 곧 임진왜란이 터졌다. ‘지금껏’과 다른 전란이었다. 20만이 밀고 들어온 대규모 전란이었다. 남(南)에서 밀고 올라온 최초의 전란이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왜군의 진격 속도가 장수 도착 속도를 앞질렀다. 장수 기다리던 관군에게 먼저 닥친 건 왜군이었다. 성이 차례대로 무너졌다. 패했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뿔뿔이 흩어졌다는 표현이 차라리 맞다.
이런 선조가 오매불망 고대한 건 명나라 군대다. 1592년 11월 10일, 명나라 사신 정문빈(鄭文彬)이 “7만의 병마(兵馬)가 이미 산해관(山海關)을 출발했다”고 전했다. 선조가 말했다. “우리나라가 불행하여 침략을 당하고도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은 황상의 은혜입니다.” 정문빈이 “귀국의 관군은 얼마나 되며, 의병은 얼마나 됩니까?”라고 물었다. 선조의 답이 가관이다. “관군은 수만이 되고 의병은 지방에 따라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여 그 정확한 숫자는 알 수가 없습니다.”
군제 개편 요구도 무시했던 선조다. 자기 나라 군대 규모조차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한심한 왕의 입에서 반복된 말은 ‘명나라 황상의 은혜’다. 명(明) 장군 이여송이 조선 전쟁에 목숨을 걸 리 만무다. 한양 진격을 앞두고 시간을 끌었다. 그때 왜군을 패퇴시킨 건 조선 군과 의병이었다. 이순신이 바다를 지배했고 의병이 육지를 흔들었다. 사정이 이런대도 선조는 여전히 명군(明軍)만을 쳐다봤다. 최상급 어물(魚物)을 이여송에게 바쳤고 그 심부름에 의병을 동원하라 했다.
군(軍)을 무시했던 선조와 그 선조가 지배했던 조선. 대가는 비참했다. 1593년 4월 30일. 1년 만에 한양에 들어온 유성룡이 이렇게 적고 있다. “…성 안에 남아있는 백성을 보니 백 명에 한 명꼴로도 살아남아 있지 않았고, 살아있는 사람도 모두 굶주리고, 야위고, 병들고 피곤하여 얼굴색이 귀신과 같았다. 날씨가 몹시 무더웠는데, 죽은 사람과 죽은 말이 곳곳에 드러난 채 있어서 썩는 냄새가 성안에 가득 차서 길에 다니는 사람들이 코를 막고서야 지나갈 형편이었다….”
420여년이 흘러 2015년이다. 중국은 그때처럼 대군이다. 일본은 여전히 호전적이다. 그때는 없던 핵(核) 광란국 북한까지 있다. 바로 이런 때 그때의 징비록이 반복되고 있다. 군(軍)을 깎아내리고, 멸시하고, 망신주고 있다. 복무 기간을 정치적 흥정의 대상으로 깎아내리고, 군 입대를 청년 실업자들의 도피처처럼 멸시하고, 일부의 비리를 군 전체 비리처럼 망신주고 있다. 관군(官軍)을 무시하던 420년전 징비록과 다르지 않다. ‘시체의 썩은 내가 도성에 가득했다’는 그 옛날 결론에 다다를까 두렵다.
호국 보훈의 달이다. 국군이 곧 호국(護國)이다. 그 국군 63만이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다. 군사력 세계 1위 미국, 2위 러시아, 3위 중국과 당당히 맞서고 있다. 핵무장국 북한, 재무장국 일본과 당당히 맞서고 있다. 언제든 죽음과 국가를 맞바꿀 준비가 된 63만이다. 언제든 젊음과 민족을 맞바꿀 준비가 된 63만이다. 언제든 민족 통일을 위해 이 국토에 뼈를 묻을 준비가 된 63만이다. 6월 한 달만이라도 가슴 저리도록 비장한 이들의 노랫말에 귀를 기울이자.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아들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늙은 군인의 노래 中에서) ★자료 인용: 징비록/조선왕조실록
[이슈&토크 참여하기 = 63만 國軍이 곧 護國이다 -2015년版 징비록을 경계하며-]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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