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메르스 트라우마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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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의 절반 가량을 감염시킨 ‘수퍼 전파자’인 14번 환자가 완치돼 지난 23일 퇴원했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지 24일 만이다. 지난달 30일 확진 판정을 받은 14번 환자는 5월 27~2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머물면서 다른 환자와 가족, 의료진을 감염시켜 2차 메르스를 유행시켰다. 그는 삼성서울병원에서만 83명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평택굿모닝병원에선 3명을 감염시켰다. 평택성모병원에서도 그로 인해 감염이 추정되는 환자가 5명 안팎이다.

14번 환자는 병세가 호전돼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자신이 슈퍼 전파자인지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자신은 완쾌됐지만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평택에 사는 조모씨는 메르스로 어머니(54)를 잃었다.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감염돼 19일 만에 숨졌다. 병원 측의 배려로 숨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있었지만 메르스 환자라 염은커녕 수의도 입혀줄 수 없었다. 몸은 이중 비닐백과 나무 관에 담겨져 곧바로 화장터로 갔다. 조씨는 ‘그 병원에 모시고 가지 않았다면…’하는 후회와 죄책감, 우울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메르스 트라우마’를 앓는 이들이 늘고 있다. 메르스 환자나 의심환자, 자가격리자, 사망자 유가족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신체적 고통과 불편에다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메르스 트라우마가 새로운 문제로 등장했다.

메르스를 겪었던 이들의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큰 후유증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죽을 수도 있었다는 공포감과, 메르스 감염자나 감염위험군이었다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 등에 심한 스트레스 반응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염됐다 완치된 뒤 퇴원한 사람들이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는 사례도 많다.

메르스로 인한 정신적 상처가 모두 병적인 것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화가 나거나 분노 조절이 안되고, 슬프고, 불안한 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기는 정상적인 반응이다. 다만 이런 증상이 오래가거나 화를 내다 못해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든지 본인이 조절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심해진다면 문제다. 이런 상황은 제때 치유하지 못하면 정신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 메르스 피해자에 대한 심리치료 지원이 시급해 보인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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