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위안부 영화 ‘귀향’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영화 ‘귀향(鬼鄕)’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 사는 강일출(87)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소재로 했다.

이 그림은 1943년 일본 순사들에게 붙들려 중국 지린의 위안소로 끌려간 강 할머니가 모진 고초를 당하다 전염병에 걸리자 일본군이 자신을 불태워 죽이려 했던 장면을 기억하며 2001년에 그렸다.

영화는 조정래 감독이 2002년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그림에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 감독은 투자자를 찾지 못해 13년간 시나리오를 다듬기만 하다가 지난해 말에야 본격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를 제작할 돈이 없다는 소식에 한 네티즌이 크라우딩 펀딩을 제안해 모금이 시작됐고, 국내외 4만여명이 소액으로 보내온 돈이 6억원쯤 됐다. 배우 손숙 등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은 사실상 무보수로 참여했다. 영화 엑스트라도 SNS를 통해 모집했다.

국민 모금으로 13년 만에 영화가 완성됐지만 이번엔 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을 못하고 있다. 조 감독이 직접 많은 곳을 찾아다녔지만 거절당했다. 대부분 흥행이 되겠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또 다른 이유는 영화 배급사들이 일본에서의 영업 등을 고려해 일본이 껄끄러워하는 영화의 배급을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선 ‘영화를 배급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강일출 할머니는 “영화를 생전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있다.

조 감독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오는 8월 15일에 시사회를 열고 영화를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사정이 여의치않자 개봉일을 올해 말로 미뤘다. 세계적인 영화제에 입상하고 나면 배급사들이 관심을 가질까 싶어 베를린영화제 등에 출품해서 돌파구를 찾는 계획도 세웠다.

조 감독은 “위안부 문제는 인권 문제다.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다”면서 “사실상 국민이 만드는 영화가 상영되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흥행 때문에,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영화 ‘귀향’이 극장에 걸리지 못하다니 너무나 가슴 아프다. 영화 배급사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 싶다. 올해만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일곱 분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48명으로 줄었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