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같은 ‘나만의 정원’ 그 꿈이 현실이 되다

국내 최대 규모 조경ㆍ·디스플레이 자재백화점 한데코

아담한 정원을 꿈꾸는 도시민들이 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들은 아파트 베란다에 다육이와 난, 관엽, 절화 등을 예쁜 화분에 담아 자신만의 녹색공간을 만들고 있다.

전원주택이나 타운하우스, 골프장, 호텔 등에서도 조경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모던한 유럽풍부터 물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는 일본풍, 아담하지만 운치가 있는 우리나라 전통정원까지 다양한 패턴으로 꾸며지는 정원은 그 공간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이같이 정원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지난 20여년 동안 주택의 조경과 디스플레이 자재를 책임지고 있는 업체가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조경ㆍ디스플레이 자재백화점인 한데코(대표 나경열)이다.

■ 조경·디스플레이 자재 5만여개 보유

지난 2006년 과천시 주암동과 서울 양재동에서 조경ㆍ디스플레이 자재 등을 도매하고 있는 한데코는 손바닥 크기의 화병부터 3m가 넘는 화기까지 수만 가지의 자재를 보유하고 있다. 재질도 다양하다. 도자기와 토기, 유리, 나무, 돌, 조각작품 등을 보고 있으면 마치 화병과 화기가 예술작품으로 느껴진다.

“도자기와 유리, 나무, 돌 등에 생명을 불어넣으면 이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하는 나 대표는 주변에 흔한 나무 한 그루와 돌 하나도 어떻게 조화를 시키느냐에 따라 감성을 자극하는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주택 내부와 외부의 디스플레이는 주택의 품격을 좌우한다고 한다. 값비싼 자재를 사용해 집을 지어도 실내장식과 조경이 주택에 어울리지 않으면 ‘김치를 안주로 와인을 먹는 격’이라고 꼬집는다.

한데코에서 취급하는 조경ㆍ디스플레이 자재는 요즘 유행하는 테라 화분부터 대형 화기, 조경용 식재, 가든용 가구, 화기 분수 등 종류도 다양하다. 여기에 주부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기자기한 화분은 기본. 자재는 외국에서 수입하거나 직접 제조한다.

나 대표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필리핀,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외국출장이 잦다. 조경과 디스플레이의 트렌드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취향이 100인 100색이라 어떤 사람은 유럽풍 모던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로맨틱하고 아기자기한 패턴을 좋아한다. 이 같은 다양한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는 항상 눈이 열려 있어야 하고, 수만 가지 종류의 자재를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나 대표의 보물창고에는 5만여개의 자재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나 대표가 외국에서 수입하고 자체 제작한 조경자재만 연 1만여 개가 넘는다.

돈으로 환산하면 6억∼7억원. 한데코의 연 매출이 15억원 정도이니까 대다수 자재가 소비되는 셈이다. 이처럼 한데코가 우리나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나 대표가 조경과 디스플레이의 흐름을 남보다 한발 앞서 캐치해 상품을 다른 업체보다 시장에 먼저 내놓기 때문이다.

■ 꽃을 좋아하던 고등학생이 최고의 조경자재 업체 CEO 올라

나 대표는 원래 조경ㆍ디스플레이 자재를 도매하는 유통업 CEO가 아니고, 꽃을 재배하고 판매하는 화훼사업가였다. 그가 꽃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교시절. 인문계 학교이었지만 화훼농사를 짓는 특목반이 있었다. 나 대표는 특목반에서 화훼농사를 시작했다.

꽃은 그의 시각을 자극했고 그는 꽃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나 대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우리나라 꽃의 메카인 남대문 꽃 시장에 취업한다. 군대 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꽃의 종류와 생산, 유통 등을 몸으로 배우게 된다.

나 대표는 제대 후 500만원의 자본금으로 남대문에서 꽃가게를 연다. 젊은 패기와 자신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980년대는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로 매일 도로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4년을 버티다 사업장을 양재동 꽃 시장으로 옮긴다. 그동안 나 대표는 점포를 옮긴 후 관엽과 절화를 취급해 왔는데 관엽과 절화가 포화상태라는 것을 인지하고 바로 난으로 품목을 변경했다. 그의 직감은 적중했다.

난 중에서도 줄기에 무늬가 있는 최고급 품종인 헤난을 판매하면서 매출은 급상승했다. 난이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품목을 바꾼 후 나 대표는 국내에서 손가락에 들 정도로, 소위 잘나가는 화훼산업의 선두주자로 떠올랐다. 사업이 안정화되면서 나 대표는 처음으로 ‘한아름’이라는 법인을 설립한다. 한데코도 한아름의 ‘한’자에서 따온 이름이다.

나 대표는 난 생산과 유통을 확장시키기 위해 1996년 과천시 주암동에 2천700여㎡ 규모의 농원을 마련한다. 그러나 나 대표가 구입한 땅의 지하수는 석회질 성분이 많아 난을 생산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조경과 디스플레이 자재로 눈을 돌린다. 꽃 생산과 유통에서 조경과 디스플레이로 사업을 전면 전환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법인이 한데코이다.

나 대표는 조경과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한데코를 10여 년 만에 국내 최대 규모의 사업체로 성장시킨 것이다.

“화훼산업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꽃 생산과 유통, 여기에 조경과 디스플레이, 특히 디스플레이 분야는 아이템 하나로 성공신화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센스있는 여성과 젊은이들이 도전장을 내고 있습니다.”

나 대표는 꽃 생산은 1차 산업이지만, 꽃 연계된 산업은 2, 3, 4차까지 다양하다며 젊은이들의 도전을 권유했다.

과천=김형표기자

[인터뷰] 나경열 한데코 대표 

정원문화 글로벌 리딩… 과천 화훼종합센터 건립 소망

Q 20대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두려움이 없었나.

A 당시 500만원이면 매우 큰 돈이었다.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부터 꽃을 판매해 왔기 때문에 큰 두려움이 없었다.

단지 점원일 때는 남의 상품을 팔았지만, 사업장을 낸 후로는 내 상품을 판 것이다. 그래서 더 신이 난 것 같다. 남대문의 실패가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그때 유통과 판매의 흐름을 파악했기 때문에 관엽에서 난으로, 난에서 조경과 다스플레이로 사업을 변경할 수 있었다.

Q 조경과 디스플레이는 유행이 자주 바뀌는데 세계적인 트렌드를 어떻게 파악하는지.

A 우리나라에 갇혀 있으면 세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다. 1년 만에 유행이 바뀌는 제품이 있고, 10년이 지나도 유행이 바뀌지 않는 제품이 있다. 세계적인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외국출장을 자주 나가는 편이다.

특히, 디스플레이 자재는 한 달 주기로 새로운 제품이 생산되기 때문에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좋은 상품을 놓치게 된다. 한데코가 빠른 시일 안에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국 사업가와의 교류이다. 생산자와 유통자 등의 네트워크가 사업 성장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Q 앞으로 사업계획은.

A 아직 이른 판단이지만, 사업가로서 절반은 성공했다고 본다. 꽃 생산과 유통, 판매 분야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고 조경과 디스플레이 사업도 꼭짓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개인적인 포부보다는 우리나라 화훼산업이 현재보다 더 발전하길 희망한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현대적인 화훼유통센터가 없다. 외국 바이어들이 오더라도 보여 줄 시설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과천 화훼종합센터가 건립되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추진됐던 사업이 보류돼 가슴이 아프지만 과천 화훼종합센터가 정상적으로 건립되는 것이 소박한 꿈이다.

과천=김형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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