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광복절 특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기자페이지

2002년 개봉된 ‘광복절 특사’는 코믹영화다. 재필(설경구)은 조금만 참으면 애인 경순(송윤아)과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기 위해 모범적인 교도소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면회 온 경순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재필은 애인의 맘을 되돌리기 위해 탈옥을 결심한다.

빵 하나 훔쳐 먹고 신원이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온 무석(차승원)은 억울함에 여러 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형량만 늘어 최고참이 된 인물.

무석은 어느 날 숟가락 하나를 발견하고는 탈옥 루트 만들기 6년, 드디어 땅굴 파기에 성공해 재필과 함께 탈옥한다. 그러나 탈옥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 이들은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끼어있음을 신문에서 보게 된다.

특사로 나왔으면 대문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었을 것을 너무 일찍 담을 넘어 버렸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는 웃음과 함께 ‘인생은 타이밍이다’를 역설한다.

정부의 8ㆍ15 광복절 특사 규모가 200만명에 이른다 하는데, 같은 제목의 이 영화가 생각났다. 이번 특별사면에는 민생 사범이 대거 포함된다. 도로교통법 위반 사범과 병역 관련 향군법 위반 사범, 가벼운 생계형 절도범과 부정수표단속법에 걸린 중소기업인 등이 대상이다. 통상 교통법규 위반 사범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데, 이번에도 운전면허 벌점 보유자, 면허 정지자나 면허 취소자 등의 상당수가 혜택을 보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특사와 관련 ‘경제 살리기와 국민 사기 진작’이라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사면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 상당수 재벌 총수가 포함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강력범이나 파렴치범, 비리 정치인은 제외된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재벌 총수와 경제인 특별사면’에 대해 반대 54%, 찬성 35%로 나타났다. ‘정치인 특별사면’에 대해선 반대 79%, 찬성 12%였다. 재계에 비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역대 정권마다 ‘국민 대화합’을 앞세워 계기가 있을 때마다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여야 정치인과 기업인 봐주기 사면으로 보인다. 광복절 사면이 지지를 받으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사면 기준을 분명히 밝히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실시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