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저녁 일곱 시쯤 잠이 든 것 같은데, 깨어보니 이튿날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잠이 보약인 건 확실했다. 천근 같던 몸이 새털까지는 아니어도 확연히 가벼워졌다. 솔직히 나는 하루에 4~5시간을 넘게 잔 기억이 별로 없다. 주말에도 일찌감치 학원을 가는 딸들을 챙기느라 늦잠 한번 자기도 여의치 않았다. 올해 휴가만큼은 원 없이 자보겠다는 게 목표였다. 결국, 그렇게 했다.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먹고 싶을 때 일어나 먹고. 그렇게 여름휴가를 보냈다. ▶이런 경우가 내게만 국한된 건 아닌가 보다. 불볕더위와 일에 지쳐 휴가를 멀리 떠나기보다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최근 시장 조사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19∼59세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에 여행이 꼭 필요한가?’를 주제로 설문했더니 2명 중 1명(51.7%)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많은 직장인이 ‘스테이케이션’을 선호한 것이다. ▶‘스테이케이션’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겨났다. ‘머물다’라는 의미의 스테이(stay)와 ‘휴가’를 뜻하는 버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집에 머물거나 집을 떠나도 가까운 곳을 찾아 휴식을 즐기는 휴가 법을 말한다. 2009년 이미 웹스터 사전에 신조어로 등록됐는데도 다소 낯선 이 단어가 올해 대한민국 여름휴가의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진정한 휴식을 즐긴다는 점에서 성숙한 휴가 문화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 국민이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바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정부가 국민 사기 진작을 명분으로 지난 14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내수 경기를 살리겠다며 이례적으로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기까지 했다. 실제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광복 70주년 특별 연휴(14~16일) 기간 중 대형마트 매출액이 25% 이상 급증하는 등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가계 빚과 노후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수많은 가장과 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에게 누적된 피로는 하루 더 논다고 풀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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