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원이 엄마 편지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ihjun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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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 자네 늘 나에게 이르기를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나하고 자식하고 누굴 의지하며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자네 날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던고. (중략)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찬찬히 와 이르소.

내 꿈에서 편지 보시고 한 말 세세히 듣고자 하여 이리 써넣네. 찬찬히 보시고 날더러 이르소. 자네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할 말 이르고 그리 가시면 밴 자식 태어나면 누구를 아비하라 하시느고. 아무리 한들 내 속 같을까.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아래 또 있을까. (중략) 나는 꿈에 자네 보리라 믿고 있노이다. 꼭 보소서. ▶1586년 이응태 묘에서 발견된 부인의 편지다.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견된 이 무덤에는 한 구의 미라와 더불어 이 편지가 수장돼 있었다.

429년 전 편지인 것이다. 진실로 서로 사랑하며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 해로하고자 소망했던 부인의 간절한 소망과 사랑, 보고픔을 가슴에 고이 품어 묻어둔 마지막 편지다. 부부지애(夫婦之愛)는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늘도 그 마음에 감동해 지금까지 이를 남겨 둔 것은 아닐지?

▶지난 25일 새벽 2시, 남북이 목함지뢰로 발발된 준전쟁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박 3일의 마라톤 협상을 벌여 6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재추진도 포함됐다. 분단 70년이 지난 현재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던 11만6천460명 중 절반 가량이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도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상봉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원이 엄마의 편지를 보면서 또다시 500년 후에 이산가족 중 한 분의 묘에서도 이런 애끓는 편지가 발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노파심이 벌써부터 생기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그분들의 한이 풀리지 않았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더 이상 부부를 갈라놓는 물리적 행위가 발생하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함일게다. 이제부터라도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들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남북이 서로 약속을 잘 지켜내길 바란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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