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탈세와 횡령 혐의로 2010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추가로 벌금을 납부하지 않을 경우 1일 5억원으로 계산해 노역장(勞役場)에 유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일당 5억원으로 51일간 노역장에 유치되면 벌금을 면할 수 있는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황제노역’ 논란이 일었다. 보통 노역형 일당이 5만~10만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일당 5억원은 국민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일당 5억원은 시급으로 치면 약 6천만원이다. 알바생의 시급은 6천원에도 못미친다. 이 판결은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초유의 특혜였다.
국회는 지난해 4월 ‘황제노역 방지법’(형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르면 1억원 이상의 벌금을 노역으로 대체하는 경우 벌금액 구간이 상승할수록 최소 노역일수 역시 증가한다. 벌금액이 1억~5억원이면 300일 이상, 벌금액 5억~50억원이면 500일 이상, 벌금액 50억원 이상이면 1천일 이상의 노역을 해야 한다.
그러나 노역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3년(1천95일)을 넘을 수 없다. 50억원 이상의 벌금을 내야 하는 사람은 노역일수가 길어도 1천95일에 불과하다. 허 전 회장은 개정안에 따르더라도 최대 1천95일의 노역형을 받아 일당이 약 2천540만원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귀족노역’ 판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둘째 재용씨는 일당 400만원의 노역을 하게 됐다. 지난달 세금 포탈 혐의로 40억원의 벌금형을 받았는데 ‘돈이 없다’는 주장에 따라 1천일의 노역을 해야 한다.
황제노역ㆍ귀족노역 논란 속에 매년 수만 명이 벌금 낼 돈이 없어 노역장을 택하지만 생계가 어려운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는 유명무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 홍일표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벌금 미납 노역장 유치처분 현황’에 따르면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된 이는 지난해 3만7천692명이었다. 2011년 3만4천361명, 2012년 3만5천449명, 2013년 3만5천733명 등 최근 4년 연속 3만명을 훌쩍 넘었다.
몇백만원의 벌금을 못내 노역장을 하는 저소득층이 늘어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여기에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서민들의 노역장도 늘고 있다. 최소한 생계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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