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하피첩, 또다른 교훈

이선호 문화부장 lshg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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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났다. 무려 18년이나 유배생활을 했다고 하니 두고온 가족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는 어느 날 아내가 보내준 치맛감에 두 아들에게 교훈이 될 내용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두 아들과 아내가 경계해야 할 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 등을 정성껏 기록했다. 다산의 가족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 서첩은 후대에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으면서 보물 제1683-2호로 지정됐다. 이것이 바로 ‘하피첩’이다.

하피첩이 세인들의 관심을 받은 것은 한 사업가가 방송사 골동품 감정 프로그램에 가지고 나오면서다. 당시 감정가는 1억원의 고가로 화제가 됐다.

이후 하피첩은 지난 14일 서울옥션 경매 목록에 오르면서 다시한번 관심이 집중됐다. 부산 모 사업가가 파산하면서 예금보험공사가 피해대금을 회수하기 위해 하피첩 등을 경매에 내 놓은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보물 하피첩은 이날 나온 고서적 중 최고가인 7억5천만원에 낙찰됐다.

경기도 실학박물관도 하피첩을 소장하기 위해 경매에 참여했지만 낙찰 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실학박물관이 제시한 금액과 낙찰가의 차이는 2억5천만원에 달했다.

실학박물관은 최고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보물급 유물을 소장해 박물관 격을 높인다는 계획이었다. 또 국내 유일의 실학박물관에서 하피첩을 소장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설득력을 얻어 경기도의회에서 경매에 참여할 예산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하피첩이 있어야 할 자리는 실학박물관이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러나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실학박물관 소장품 구입예산은 수년째 전무했다. 또 실학 박물관 전시품 중 70~80%가 복제품이라니 충격적이다.

이같은 현실은 비단 실학박물관에 국한돼 있지 않다. 경기도박물관, 미술관 등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무엇이든지 일의 순리가 있다. 평소에 방치하다시피하다가 갑자기 무엇을 이루려면 잘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미래 만큼 과거도 중요하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경기도는 지금이라도 도립 박물관, 미술관에 대해 꾸준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이선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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