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곽상욱 in 수원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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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일. 강원도 정선군청 시무식에서 낯선 모습이 목격됐다. 애국가도 아니고 군가(郡歌)도 아닌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그뿐만 아니다. 시 관계자들이 전에 없던 아리랑 홍보에 나섰다. 아리랑은 원래 강원도에서 생긴 소리라고 강조했다. 40여 년 전에 강원도 무형 문화재로 지정돼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됐다고 자랑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개ㆍ폐회식에도 아리랑을 주제가로 쓰겠다고도 밝혔다. ▶이유가 있었다. 그 보름여 전,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우리 전통 가요가 세계인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그러자 아리랑의 연고(緣故)를 만들려는 지자체들의 경쟁이 시작됐다. 경남 밀양은 아리랑 파크 조성을 들고 나왔고, 경북 문경은 아리랑 박물관, 경북 영천은 대규모 경창 대회를 들고 나왔다. 전문가들이 ‘소모적인 경쟁’이라며 비판했다. 그래도 지자체의 전쟁은 계속됐다. 지방 자치가 나은 폐단 아닌 폐단을 여실히 보여준 예(例)였다. ▶지난 8일 오후 곽상욱 오산시장이 수원에 등장했다. 제52회 수원화성문화제 전야제가 열린 수원 연무대 무대였다. 각계 인사들이 보낸 축하 영상 순서였다. 정치인, 도지사, 외국 사절 등의 영상이 지나갔다. 그 속에서 곽 시장이 등장했다. “수원시민 여러분, 오산시장 곽상욱입니다. 수원화성문화제 개막을 축하드립니다.” 관객들도 이상했는지 여기저기서 ‘오산시장이네…’라며 술렁댔다. “우리 오산에도 독산성 문화제가 열립니다. 많이들 와주세요.” 곽 시장 인사의 마무리는 역시 오산시 실익 챙기기였다. ▶오산시청과 수원시청의 거리는 12.6㎞다. 승용차로 15분 정도 걸린다. 자전거 공식 소요시간이라야 47분이다. 이처럼 가까운 곳에 시장이 이웃 지자체를 찾아 인사말을 건넨 일이다. 하나도 이상해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시민들에겐 낯설었다. 작금의 시군 관계가 그렇다. 서로 자기네 문화 행사가 최고라고 고집한다. 때론 견제하고 때론 깎아내리기도 한다. 같은 정조대왕의 유업(遺業)을 두고도 서로 다른 행사를 개최한다. 수원화성문화제에 등장한 오산시장의 인사말이 이채롭게 보인 이유다. ▶며칠 전 경기 남부권 시장들이 모였다. 상생을 위해 서로 협조하기로 했다. 그 약속 중엔 문화행사 협조도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오산시장이 수원화성문화제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지금부터라도 시군 간 문화행사가 협조될 것 같아 다행이다. 화성 행사를 찾는 염태영 시장, 수원 행사를 찾는 채인석 시장도 목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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