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짓는 부모 닮지 말라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딸을 서울로 유학(?) 보내놓고는 행여 밥이라도 굶을까 염려한 어머니는 먼 친척 아주머니에게 나를 맡기셨다. 조용한데다 친절하고 음식 솜씨도 좋았지만 2년을 채 함께 살지 못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산 중턱, 소위 말하는 달동네에 자리한 조그마한 주택은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도 불편했지만, 걸핏하면 단수가 됐다. 그나마 미리 알려줘 급수차가 오면 물을 받아두었다가 쓰기도 했지만, 예고 없이 끊기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한창 외모에 신경 쓸 나이이니 차라리 밥 물이 없어 밥은 굶을지언정 씻지 않고 학교에 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겨울엔 연탄불 위에 올려진 커다란 솥에서 떠주시는 뜨거운 물 한 바가지에 찬물 서너 바가지를 받아썼는데, 물 배급받는 게 눈칫밥보다 더 싫었다. 그나마 고지대라 한창 물을 많이 사용하는 시간에는 졸졸졸 흐르니 콸콸 쏟아지는 고향집 펌프 물을 그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높은 지대에 살면 물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물을 원 없이 사용하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하면서다. 아버지를 졸라 결국 논 닷 마지기를 팔게 했고 부자들이 많이 산다는 연희동의 한 연립주택에 전세를 살면서였다. 물탱크에 저장된 물을 사용하니 단수가 돼도 하루 이틀은 끄떡없었다. 평지다 보니 물 나오는 소리도 시원했다. 이후 우리나라가 물 부족 국가라는 사실조차도 잊고 살았다. 물이 부족해 받아놓은 물에 그릇을 씻어 한두 번 헹구고 사용한 날도 많았는데, 언제부턴가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채 설거지하는 습관마저 생겼다.
▶70~80년대 경험했던 단수를 대비해야 할 지경에 처했다. 올해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염려됐는데, 현실로 나타났다. 최악의 가뭄을 겪는 충남 서부지역에서는 지난주부터 제한급수가 시작됐다. 안타깝게도 제한급수에 속이 타들어가는 건 소상공인들이다. 음식점, 세탁소, 다방 등이 직격탄을 맞았다. 경기도내 저수율도 역대 최저치를 나타내고 있으니 제한급수가 비단 충청도만의 문제는 아닌듯하다. 옛말에 가뭄은 나라님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참에 물을 낭비하는 잘못된 습관이 있다면 고쳐볼 일이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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