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어느 대학 화장실 낙서의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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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명문대학 화장실에 이런 낙서가 있었다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한다고 자랑하지 마. 머리 좋은 놈 못 당해. 머리 좋은 것 자랑하지 마. 운 좋은 놈 못 당해.” 그런데 어느 대학 화장실은 ‘운 좋은 놈’이 ‘탯줄 좋은 놈’으로 바뀌었고, 또 어느 대학은 그 밑에 한 줄 더 넣어 ‘어차피 치킨집 차릴텐데’라고 써있더라는 것이다.

 

운이 지배하고 그 보다 탯줄, 즉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해학적 낙서가 왠지 가슴을 찌른다. 더욱이 그렇게 피터지게 경쟁하다 결국은 치킨집이나 차릴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취업현실은 우리 같은 기성세대가 그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것만 같다.

 

우리 젊은이들이 부대끼며 느끼는 것은 심각한 불평등의 높은 장벽일 것이다. 그것은 당장 생존의 기본인 주택문제에서 출발한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합격자 발표는 12월 초, 그러니까 1개월도 더 남았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아직 합격자 발표도 안했는데 학교 근처의 아파트 전세는 벌써 바닥이 났다는 것이다. 합격에 자신을 갖고 있거나 경제력 있는 부모들이 학교 인근에 미리 집을 마련하는 것인데 이 때문에 전셋값도 오르고 전세난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인근 아파트의 때 이른 전세전쟁은 경기도 일대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미 서울의 전세물량 부족사태는 잘 알려진 사실. 그래서 서울 인근의 경기도에 신축 중인 아파트에 전세 예약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완공되지도 않은 아파트에 달려가 웃돈을 치르고 예약을 하는 것.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투기꾼들은 2억7천만원의 전세가가 집이 완공되는 내년 봄에는 5천만원 이상 오를 것이라고 장담을 하고 있는 것이다.

 

5천만원,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에 해당하는 돈이 잠깐 사이에 날아가는 이 심각한 불평등을 젊은 세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렇게 하여 우리의 가계부채는 1천100조에 이르렀는데 이는 작년보다 2.9% 증가한 것으로 그 속도가 위협적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집 없는 직장인들 중에는 힘든 전세대란을 겪느니 차라리 저렴하고 작은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가령 2억원 은행대출로 집을 마련했는데 주택시장 쇼크로 집값이 떨어질 경우 2억원 은행대출은 실제로 3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 같은, 그래서 오히려 빚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모기지론’ 파행으로 미국뿐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고민 속에서도 서울의 최고급 부자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1억원 수표뭉치가 나뒹군 사건이나 부산 해운대 펜트하우스가 3.3㎡당 7천만원의 아파트 분양가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는데도 청약자가 68대 1의 경쟁을 보였다는 뉴스에 다시 한 번 이 땅의 ‘불평등’의 심각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이런 불평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 고민이다.

그래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프린스턴대학 앵거스 디턴박사는 이와 같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깊게 파고들어 수상의 영광을 안았는데 그 역시 “불평등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이제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때 그는 불평등이 오히려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여 큰 주목을 받았었지만 이제는 그 수준을 넘었다는 심각한 경고다. 지금 우리는 이 경고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모두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 고민 속에 대한민국의 더 큰 미래가 달려있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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