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본품보다는 사은품 때문에 물건을 사는 경우가 있다. 예쁜 디자인의 보온병 때문에 커피를 사고, 맘에 드는 고급진 스카프 때문에 월간지를 구독하고, 좋아하는 가수의 CD 때문에 가방을 산다. 물론 마케팅에 넘어간 거지만, 원가 계산을 해 남는 장사라고 생각되면 저지르게 된다.
이번엔 작가 김훈의 라면냄비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김훈의 신작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를 출간하며 김훈의 얼굴이 새겨진 양은냄비와 김훈이 즐겨 먹는다는 라면을 예약 이벤트로 내놨는데 책 1천800부가 이틀 만에 동났다.
잘 나가는 작가의 책에 라면냄비 같은 사은품을 끼워주는 것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문단과 출판계 일각에선 ‘김훈 정도면 글로 승부해야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못마땅한 반응이 있었다. 독자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책 팔려고 별짓 다한다’는 부정적 반응과, ‘재밌는 마케팅에 괜한 시비’라는 옹호의 목소리가 섞여 나왔다.
출판유통심의위원회는 최근 김훈의 라면냄비 출간 이벤트를 도서정가제 위반으로 판정했다. 정가(1만5천원)의 15%인 경제적 혜택 제공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신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도서 판매시 최대 10% 할인과 5% 적립금 제공이 가능하며 그 이상의 혜택은 불법이 됐다.
문학동네는 양은냄비 주문 제작에 1천800원이 들었다고 밝혔다. 함께 제공한 라면은 개당 554원을 주고 구매했다. 최소 2천354원의 경제적 혜택으로 돌아간 것인데, 이는 ‘라면을 끓이며’의 5% 적립금인 750원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심의위는 양은냄비의 시중가를 개당 3천원으로 봤으니 그 금액은 더 늘어난다. 문학동네는 도서정가제 위반인 줄 몰랐다고 해명했지만 지난 1년여간 많은 위반 사례가 신고 접수돼 모르진 않았을 것이다. 알면서도 외면했다는 게 맞을 거 같다.
대형 출판사들이 이런 행위로 적발된다 해서 실보다는 득이 크다. 도서정가제 위반으로 신고되면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이벤트로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게 되면 그 이득은 100만원을 훌쩍 넘게 된다. 그러다보니 편법으로 도서정가제를 어기고 있다.
책을 잘 안 읽는 풍토다. 책이 안 팔리니 ‘오죽하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무조건 나쁘다, 안된다 말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책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은 어느 선까지 허용돼야 하는 걸까. 연필이나 책갈피는 되고, 양은냄비는 안되는 정도?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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