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웃픈 신어(新語)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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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도 새로 생겨난 신어(新語)가 많다. ‘언어는 하나의 사회적 사실’이라는 언어학자 알베르 도자의 말처럼, 신어는 그 사회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헬조선, 흙수저, 노오력, 편도족, 문송, 낄끼빠빠, 복세편살, 백금 세대…. 최근 TV나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신어들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말이라는데 ‘도대체…’라는 생각이 든다. SNS나 인터넷과 가깝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니 말이다.

 

‘헬조선’은 올해 최고 유행한 신어다. 취업난과 경제 불황 등으로 살기 힘든 한국을 ‘지옥(Hell)’에 빗대 ‘헬조선’이다. ‘흙수저’란 말도 자주 쓰였다. 서민층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를 뜻한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대학 입시와 취업을 쉽게 하는 부잣집 아이를 일컫는 ‘금수저’에 빗댄 것이다. 후천적 노력으론 신분 상승을 기대할 수 없다는 좌절감이 깔려있다.

 

청년실업과 관련된, 특히 인문계 대학생의 취업난을 보여주는 신어도 많다.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 ‘지여인’(지방대 여자 인문대생), ‘공바라기’(공대생이 되고 싶은 인문계생), ‘취업 깡패’(문과와 달리 기업이 선호하는 이공계 전공자)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 졸업후 장기간 취업을 못한 ‘청년 백수’ 관련도 적잖다. ‘화석 선배’(취업이 안돼 학교를 오래 다니는 고학번 선배), ‘장미족’(졸업후 장기 미취업자), ‘NG족’(No Graduationㆍ졸업을 계속 미루는 대학생), ‘대오족’(대학 5학년생) 등이다. 스펙을 많이 쌓아 만리장성처럼 됐다는 ‘만리장스펙’도 있다. ‘노오력’은 노력만 강조하는 기성세대에 대한 비판과 함께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는 사회를 풍자한다.

 

결혼을 미루거나 안하는 비혼이 증가하면서 1인 가구도 늘어 이와 관련된 신어도 나왔다. 편의점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편도족’, 혼자 밥 먹는 ‘혼밥’, 혼자 술 마시는 ‘혼술’ 등이 그렇다. 언어 유희로 현실을 도피해 보려는 것일까. 별 의미 없이 말을 축약하는 행태의 신어도 많다. 낄끼빠빠(낄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빼박캔트(빼도 박도 못하다), 번달번줌?(번호 달라면 번호 줌?) 등등.

 

신어에 대해 말의 어휘를 풍부하게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올해는 청년층의 불안ㆍ분노 등이 반영돼 공격적이고 부정적인 것들이 많다. 부정적 신어가 많다면 그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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