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세종대왕 패혈증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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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上不喜游田 然肌膚肥重 須當以時出遊節宣’(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지만, 몸이 비중하지 않나. 마땅히 때때로 나와 놀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세종이 즉위한 1418년 10월. 상왕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한 충고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걱정이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갖가지 질병이 세종을 괴롭혔다. 실록을 바탕으로 추정되는 병명만 수두룩하다. 당뇨, 풍질, 부종, 임질, 수전증…. ▶그런 세종의 직접적 사망 원인은 소갈증과 등창 합병증이다. 현대 의학은 이를 전형적인 패혈증으로 본다(강영민 著 ‘조선왕들의 생로병사’ 등). 공교롭게 아들 문종의 사인도 패혈증이다(김정선 著 ‘조선시대 왕들의 질병치료를 통해 본 의학의 변천’). 아버지 세종의 생활 습관을 그대로 따랐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들 문종이 같은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오늘날의 표현대로면 전형적인 가족력이다. ▶현대 의학에서는 패혈증에 좋은 음식으로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든다. 과일과 야채 중에도 항염작용이 강한 것과 소화 효소를 많이 함유하고 있는 것을 권한다. 신선한 파인애플, 파파야, 모과, 유자 등이다. 호도 등의 견과류도 패혈증을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세종의 식생활은 철저하게 고기 위주였다. 오죽하면 태종이 ‘주상이 고기가 아니면 밥을 먹지 못한다’는 걱정을 유언에서 했을 정도다. 패혈증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식생활이다. ▶다른 견해도 있다. 세종은 지독한 책벌레였고, 일 중독자였다. 아버지에게 빼앗기지 않은 책 ‘구소수간(歐蘇手簡)’을 1,100번이나 읽었다는 기록도 있다(연려실기술). 왕이 되어서도 그랬다. 새벽 2~3시에 일어나 하루 20시간을 정사에 매달렸다. 재위 32년 대부분을 이렇게 보냈다. 세종의 병증(病症)을 과중한 업무와 지나친 스트레스로 해석하는 현대 학자들이 많은 이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운동을 많이 했다. 야당 시절에는 등산이 곧 투쟁이었다.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내 조깅도 유명하다. 운동을 싫어했던 세종대왕과 다르다. 그런데도 사인은 같은 패혈증이다. 물론 600여년의 차이가 있고, 54세와 88세라는 차이도 있다. 두 지도자의 사인을 패혈증이라는 하나의 화두로 엮어보려는 것은 억지다. 그럼에도, 함께 엮어 생각할 부분이 있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 이전에 가장 스트레스가 많았던 지도자들이라는 점이다. 종사(宗社) 스트레스 32년(세종대왕)과 야당(野黨) 스트레스 35년(김영삼)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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