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원 화성, 알고 보면 다르다

이명관 사회부차장 mk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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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원 화성을 갔다. 자주 가는 곳이지만, 이번 화성 방문은 특별했다. 해설사와 함께 해서다. 막연히 날 좋은 날 지인들과 함께하는 산책과는 달랐다. 정말 달랐다.

 

창룡문부터 장안문을 거쳐 서북공심돈,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까지 2시간 넘게 돈 수원 화성은 감탄을 자아냈다.

 

그 중 백미는 방화수류정이라 불리는 동북각루. 그리고 화홍문이었다.

 

인공호수인 ‘용연’ 위에 있는 동북각루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에 맞춰 지은 곳이다. 편액은 꽃을 찾고 버드나무를 따라 노닌다는 뜻의 방화수류정이라고도 불린다.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화려하고 우아한 정자인 이곳은 정조가 연회를 하면서 직접 활을 쏘기도 한 곳이다. 이곳은 왼쪽과 오른쪽이 불균형이어서 통상적인 정자와는 모습이 달랐다.

그 의문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풀렸다. 정자 중앙에서 볼 때 왼쪽은 영의정을 포함한 3정승이 앉는 곳이어서 좁았고, 오른쪽은 수원의 관료들이 좌정하는 곳이어서 훨씬 넓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독특한 평면과 지붕형태를 갖춰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옆의 화홍문도 압권이었다. 이곳은 화성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수원천 위에 만들어진 곳이다. 화강암과 벽돌로 쌓은 이곳은 7개로 물이 나뉘어지는 칠간수문으로 만들어졌다. 수문 내부에는 쇠창살을 설치해 외부로부터 침입을 차단하도록 했다. 수문ㆍ교량으로 이용되고 비상시에는 총포와 대포를 갖춘 군사시설로 활용됐던 이곳은 실용적 기능성과 아름다운 외관이 조화된 곳이었다.

이곳을 중심으로 당시 정조는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전국적 규모의 큰 시장과 상인들을 유치해 신도시로 발전해 나가도록 했다. 이후 일제 치하에는 유명한 요리집과 기생들이 공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다. 조상들의 슬기와 지혜가 담겨 있는 수원 화성은 알고 보면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명관 사회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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