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크리스마스 씰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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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보면 주인공 콰시모도는 등이 많이 굽었다. 결핵의 후유증 때문이다. 우리 몸의 기둥이랄 수 있는 척추뼈에 결핵이 생기면 뼈가 녹아내려 한 덩어리가 되고 등이 굽는다. 예술 작품 속엔 결핵에 걸린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의 미미는 결핵으로 죽어가는 청순가련형으로 묘사되고,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 영화 ‘레미제라블’의 팡틴도 결핵을 앓다 죽어간다. 결핵에 걸려 일찍 사망한 예술가도 많다. 제인 오스틴(42세), 샬롯 브론테(39세), 모딜리아니(36세), 프란츠 카프카(41세), 이상(27세), 이효석(35세) 등이 그렇다.

 

결핵은 산업화가 본격화된 18~19세기 유럽에서 크게 유행했다. 사람들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건강이 나쁜데다 작업환경이 좋지않은 공장에서 일하다 보니 결핵이 극성이었다. 결핵은 공기로 전염되기 때문에 공장, 학교, 군대처럼 사람이 집단을 이룬 곳에서 많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 후 가난으로 결핵환자가 대량 발생했다. 정부가 결핵퇴치사업을 펼치고, 경제성장과 국민 식생활 개선 등으로 보건의식이 향상됐지만 아직도 인구 10만명당 100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중 결핵발생률, 유병률, 사망률 모두 1위다.

 

결핵하면 크리스마스 씰이 생각난다. 유럽에 결핵이 만연할 때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이던 아니날 홀벨이 결핵퇴치 기금 마련을 위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로 발행했다. 우리나라에선 1932년 처음 도입됐다. 이후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씰은 국가 주도의 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확대됐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성탄카드 옆에 우표와 나란히 붙여졌던 씰은 손편지가 자취를 감추면서 추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씰 발행량은 2006년 2천200만장에서 계속 줄더니 2014년 1천59만장까지 감소했다. 모금액도 같은 기간 61억원에서 34억원으로 급감했다. 결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올해 크리스마스 씰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K-리그 소속 12개 구단 마스코트를 활용해 발행됐다. 강인한 폐, 건강한 폐활량을 상징하는 축구를 통해 폐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올 연말엔 크리스마스 씰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 결핵환자도 돕고 아름다운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줄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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