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정당 후원금 제도는 1965년부터 40여 년간 지속됐다. 기업들의 정치 헌금 통로로 활용되면서 ‘정경(政經) 유착’의 폐해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샀다. 실제 1990년대만 해도 주요 정당들이 후원회를 열 때면 기업체 관계자들이 장사진을 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후원금 내역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다 2003년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로 ‘차떼기 불법 정치자금’ 사건이 불거지면서 2006년에 폐지됐다. 옛 대검 중수부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캠프는 2.5t 트럭에 담긴 현금 150억원을 트럭째 넘겨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 후보측은 기업들로부터 823억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고, 노무현 후보 측은 113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아쓴 사실이 공개됐다. 이후 국회의원은 정치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정당은 후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3일 정당 후원금을 금지한 정치자금법 조항(6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당 후원금 금지는 정당 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과잉 입법”이라며 “국회는 2017년 6월까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2017년 12월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부터는 정당이 후원회를 열 수 있고, 유권자가 정당에 직접 후원금을 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헌재의 결정 요지는 현행법이 허용하고 있는 국회의원 등 정치인 개인뿐 아니라 정당에 대해서도 유권자가 후원금을 통해 정치적 지지 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국고보조금이 주요 정당에만 편중돼 군소 정당 활동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만큼 불평등ㆍ불합리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은 원론적인 면에서 맞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 헌금을 매개로 기업ㆍ이익단체와 정치권의 유착이 여러 문제를 낳았기 때문에 우려되는 바가 많다. 정당 후원금이 금지된 지금도 대기업이나 단체들이 입법 로비나 보험 성격으로 직원들 이름을 빌려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금’을 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당 후원금이 허용되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또는 특혜를 노리고 얼마나 더 극성을 부릴까 걱정이다.
정당 후원금이 부활하면 그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 과거 정당 후원금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정경 유착 시비를 차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취나는 구태가 반복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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