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여동생이 세상을 떠났다. 12일 교통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고 한다. 그 옆자리에 있던 남동생은 크게 다쳐 위독한 상황이란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서울 SK와 경기가 2시간 앞으로 다가왔건만 눈물이 머지지 않았다. ‘오, 나의 키지(Kizzy·여동생의 애칭).’
홀로 남았을 누나 생각이 났다. 이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할 수가 없을 텐데. 가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누나의 떨리는 목소리가 전해왔다. “찰스, 여기는 우리가 잘 지킬 테니 너는 경기에만 집중하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감독님을 찾았다. 그는 어깨를 두들겨주며 “팀은 신경 쓰지 말고 미국에 다녀오라”고 권유했다. 또 한 번 눈방울이 쏟아졌다. 울먹이며 가까스로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경기에 나가 팀이 승리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 코트에 나오자 동료들이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는 “오늘 경기는 로드 널 위해 꼭 이기겠다”고 약속해줬다.
감독님과 코치님, 동료들이 왼쪽 가슴에 리본을 달고 추모의 뜻을 나타냈다. 또 한 번 여동생 생각에 울음이 터졌다. 겨우 눈물을 멈추고, 경기에 임했다. 연장전 포함 45분 동안 어떻게 뛰었는지 모르겠다. 93대96. 우리가 졌다. ‘내가 경기 종료 직전 던진 3점슛이 들어갔더라면….’ 경기가 끝나고 상대 선수들이 위로를 건넸다. 동생을 가슴에 묻고 뛴 첫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동생의 장례식엔 참석하려고 했다. 누나와 연락을 해보니 교통사고로 인한 법적 절차 때문에 장례식은 미국시간으로 19일에 치러진단다. 2경기를 더 뛰고 19일(이하 한국시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구단에는 24일 돌아오겠다고 했다.
미국에 도착하니 다행히 남동생은 큰 고비를 넘겼다고 한다. 남동생의 병원비를 해결하고, 키지의 장례식 비용을 모두 내야 했다. 벌이가 녹록지 않은 누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큰 금액이었다. 한국에서 챙겨간 현금도 부족했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미국 체류기간은 늘어났다.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27일 돌아가겠다고 했다. 구단도 흔쾌히 승낙해줬다.
한국에 입국했다. 감독님부터 동료 모두가 반겨줬다. 그러면서도 “로드, 너 없이도 2연승했어”라며 으쓱거렸다. 웃음이 나왔다. 또 하나의 가족 품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예정보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 미안한 마음이 샘솟았다. 30일 창원 LG와 홈 경기에 나선다. 열흘 만에 출전하는 경기다. 하늘에 있는 키지를 위해서라도, 나를 묵묵히 기다려준 팀을 위해서라도 꼭 이기고 싶다.
조성필기자
※ 취재 결과 등을 토대로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 외국인 선수 찰스 로드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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