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시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듭니다.”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나 나올 법한 강력한 메시지였다. 한껏 높인 톤과 내용이 듣는 이들을 소름 돋게 했다. 12월 31일 자정 화성행궁 앞 여민각(與民閣)에서다. 해마다 하던 타종식이다.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행사다. ‘시장’에게도 이미 다섯 번째다. 그런데 이날만은 달라 보였다. 10초 남짓 짧은 인사말 속에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송구영신’의 덕담 속에 묻어 버릴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염태영 시장은 설명했다. “여러분 올해는 수원화성 방문의 해가 개최됩니다. 수원 화성 축성 2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반드시 성공한 행사로 만들어주십시오.” 소리 소문 없이 4년을 준비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타당성 검토도 했다. 시민 서포터스는 어느새 2,200명이나 모였다. 누가 봐도 진득하게 준비해온 수원화성 방문의 해다. 그런데도 염 시장은 노심초사다. ‘요즘 잠이 안 온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2016년 첫날 0시 메시지는 절박했을 게 틀림없다. “위대한 시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듭니다”는 그런 절박함이 만들어낸 선창이었다. ▶대한민국 유권자에게 필요한 구호다. 지난 4년간 유권자는 19대 국회를 지켜봤다. 민생 외면하는 국회, 밥그릇 챙기는 국회, 패거리 놀음하는 국회…. 그때마다 유권자들은 결심했다. “너희들 다음 선거 때 두고 보자.” 총선을 100여일 앞둔 지금까지도 그 결기는 유효한 듯 보인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60%가 ‘현역은 안 찍겠다’고 답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그대로 대입한다면 20대 국회에 살아 돌아갈 현역은 절반이 안 돼야 맞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표심이란 게 여간 변덕스럽지 않다. 역대로 후한 점수를 받았던 국회는 없다. 거의 모든 여론조사가 ‘현역 배제’ ‘정치 교체’를 강조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면 달랐다. 2선이 3선 되고, 4선이 5선 됐다. 이런 표심을 눈치 못 챌 정치가 아니다. 그러니 ‘현역 교체 요구 70%’라는 여론조사 따윈 거들떠도 안 보는 것이다. 매번 그 얼굴들을 내 보냈고, 그 얼굴끼리 국회에서 재회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보는 게 확률 높은 배팅인지 모른다. ▶그날 여민각에 시민들은 흥분으로 가득했다. “위대한 시민은 위대한 역사를 만듭니다”라는 시장의 선창에 1천여 시민이 엄청난 함성으로 답했다. 그렇게 해보자는 약속으로 들렸다. 2016 총선 판에도 누군가 선창을 해야 한다. 절박한 마음으로 정치개혁과 국회개혁을 호소해야 한다. “대한민국 유권자 여러분, 위대한 유권자가 위대한 정치를 만듭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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