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에서 ‘혁명군’이라는 또 하나의 특별한 신분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새로 군림한 ‘완장’을 그 막강한 위세로 모든 분야에 파고들었다. 그것이 신분사회가 갖는 매커니즘이다.
필자가 얼마 전 인도에서도 가장 현대문명의 교류가 활발한 뭄바이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일행을 태우고 여러 곳을 돌아다닌 운전기사는 호텔에 도착해서는 일행의 가방을 현관문 앞 까지만 내려주고 쏜살같이 가버렸다.
안내인의 설명은 그가 인도의 카스트 신분제도에서도 ‘불가촉 천민’이기 때문에 호텔에 들어 온 수 없어 그랬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인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쉬드라 등 4계급이 있지만 실제로는 2천378개나 되는 계급사회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야말로 계급으로 이뤄진 나라. 이중에서도 100여 개 계급은 ‘불가촉 천민’이다. 일반인과 접촉할 수 없는 이름 그대로 천민. 가령 남의 빨래만 해주는 계급의 ‘도비왈라’ 역시 아버지가 빨래꾼이면 아들도 그것을 대물림해야 하고 이런 사람들이 모여 집단촌을 이루고 있다.
뭄바이에서 제일 큰 빨래터 ‘도비가트’는 5천명 이상의 빨래꾼들이 구정물처럼 더러운 물속에서 빨래를 하는데 그렇게 인간 이하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 하루 종일 일하여 버는 돈은 우리 돈 5천원 정도. 지금도 그 깡마른 체구에 움푹 들어간 눈으로 빨래를 하던 그들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안쓰럽다. 물론 인도는 법으로 카스트제를 무효화시켰다.
그러나 법은 법일 뿐 아직도 현실은 그 카스트제가 존재한다. 우리 신라도 골품제라는 신분제의 족쇄가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신분의 상승을 개인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성골, 진골이 완전한 지배계층을 이루었고 진골 아래 6두품에서는 ‘아찬’까지만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의 관직으로 계산하면 사무관 바로 아래, 군대에서는 초급 장교가 아닐까 추리해 본다. 대학자 최치원도 6두품 이어서 중국에 건너가 학문을 닦고 중국 과거시험에도 합격하였지만 신라로 귀국해서는 신분의 벽에 걸려 지배계층에 오르지 못하고 후학을 기르는데 충실했다.
최신지, 최승우도 골품제 벽을 넘지 못하자 하나는 왕건에게 또 하나는 견훤에게 넘어가 결국 신라의 운명을 재촉하는 역할을 했다.
지금 우리 사회도 점차 골품제 신분제도가 굳혀가는 것 같다. 지난해 SNS상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단어 ‘금수저’ ‘흙수저’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노조원 역시 같은 조합원이 아니라 ‘귀족노조원’이 있고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도 주류 비주류가 있다.
직장 마다 ‘정규직’이 있고 ‘비정규직’이 있으며 그 밑에 ‘일웅직’이 있다. 학생들이 빗자루로 교사를 폭행한 찬밥신세 취급을 받는 기간제 교사도 있다.
이들 비정규직은 신라의 골품제처럼 17계층 가운데 ‘아찬’ 까지만 오를 수 있지만 그것도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대단한 운이 있어야 한다. 새누리당에서도 친박, 비박이 있고 친박은 다시 진박, 가박 등으로 구분되면서 공천을 앞두고 ‘박심(朴心) 마케팅’이 한창이다.
인간이 모여 사는 세상, 신분제도는 어쩔 수 없이 필요하고 그것이 사회조식을 이끄는 불가피한 힘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신분제도가 골품제처럼 폐쇄적이고 개방되지 않는 데서 오는 역기능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그래서 심각한 것이고 ‘귀족 노조원’이 있어서도, ‘흙수저’가 대물림돼서도 안 되는 것이 결국 그 폐단이 사회의 암 덩어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오늘의 명제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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