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염태영·이재명 戰-Ⅰ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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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잘하던데요. 청와대 출신들로 인수위원회도 꾸리고….” 이 말의 묘한 여운이 5년 넘게 남아 있다. 그때의 성남시장실은 어수선했다. 어설프게 꾸려진 소파가 인터뷰 장소였다. 그전까지 신임 성남 시장의 이미지는 강성이었다. 전임 시장의 행정을 어지간히 물고 늘어졌다. 자수성가, 진보주의자, 재야운동가, 고소ㆍ고발로 각인된 이미지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잘 웃었고 말도 잘 했다.

그날 이재명 시장이 툭 던진 수원 평(評)이다. 사실 그랬다. 2010년 ‘염태영 인수위’는 화려했다. 이계안 위원장은 전국적 인물이었다. 황인성 위원은 청와대 수석 출신이었다. 이재준 위원-뒷날 부시장이 되는-은 박사였다. 그때까지의 시ㆍ군 인수위와는 급이 달랐다. 혹시나 기웃대던 지역 인사들의 입이 댓 발쯤 나왔다. 이 시장의 덕담 속엔 그런 가시가 돋쳐 있었다. 적어도 대담자에겐 그렇게 들렸다.

그 후 두 시장은 승승장구했고 재선도 했다. 어느덧 6년차 시장이다. 염 시장은 제일 큰 지자체의 장이고, 이 시장은 두 번째 큰 지자체의 장이다. 양쪽 모두에선 ‘굵직한’ 다음 정치 일정이 거론된다. 염 시장 주변에서는 “경기도지사 하셔야죠”라는 말이 나온다. 이 시장 주변에서는 “대권 후보 여론조사 ○등입니다”라는 말이 들린다. 지금 둘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시장이자 미래가 기대되는 정치인이다.

이런 둘이 충돌했다. 누리 예산에서다. 염 시장이 시비(市費)를 들여 우선 집행키로 했다. 파국을 예상하고 159억원을 준비해뒀던 모양이다. 수원의 유치원과 부모들을 넉 달간 안심시킬 돈이다. 꽉 막힌 정국을 뚫어낸 첫 결정이다. 염 시장은 더민주당 소속이다. 누리 예산 보이콧이 당론이다. 그럼에도, 시비 ‘우선’ 투입을 결정했다. 시민들이 좋아했다. 새누리당 도지사까지 ‘나도 도비 쓰겠다’며 이어받았다.

이때가 7일이다. 그런데 3일 뒤 이재명 시장이 입을 열었다. 본인의 SNS를 통해서다. “도지사는 소속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도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중앙정부에 경기도민의 혈세를 상납해선 안된다.” 문맥이 직접 겨눈 대상은 남 지사다. 그런데 ‘도지사’를 ‘시장’으로 바꾸고, ‘경기도민’을 ‘수원시민’으로 바꾸면 글의 타깃은 ‘염태영’이다. 누가 봐도 염태영 행정 돌려 차기다.

누리 예산 파국을 풀어가는 두 시장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염 시장의 시비 집행 결정은 조용히 이뤄졌다. 159억원을 미리 준비해뒀는지도 다들 몰랐다. 시비 집행 결단이 언론에 ‘대박’을 친 후에도 그랬다. 부속실과 공보실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모두 거부됐다. 반면, 이 시장은 누리 예산 정국에서 여론을 끌고 다녔다. 청년 배당, 무상 교복, 산후 조리비 지원…. 역(逆)발상으로 연일 치고 나간다.

따지고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5년 내내 둘은 그랬다. 신중함과 과감함, 대화와 파격으로 구분됐다. 그런데 신기하다. 둘이 충돌했다는 기억이 없다. 툭하면 싸우는 게 시장들이다. 물 때문에 싸우고, 화장터 때문에 싸운다. 오래전부터 성남 공무원들은 염 시장을 얘기했다. 언제부턴가 수원 공무원들도 이 시장을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두 시장은 충돌하지 않았다. 서로를 입에 담았다는 기록도 별로 없다.

그러다가 이번에 붙었다. 염 시장의 위민론과 이 시장의 투쟁론이 붙었다. 쉽게 정답을 내릴 논쟁은 아니다. 굳이 결론을 고민할 필요도 없다. 지금 흥미롭게 볼 대목은 두 시장이 6년만에 붙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충돌이 선의로 가면 좋다는 것이다. 미래가 없는 척박한 경기도 정치판이다. 염태영 도지사의 꿈도 좋고, 이재명 도지사의 꿈도 좋다. 수원시장 대통령도, 성남시장 대통령도 가슴 설레는 상상이다.

어차피 평가단은 지역민이다. 어느 지역이 행복한가가 평가 항목이다. 두 시장도 잘 알고 있다. 누리 예산으로 수원 시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염 시장이고, 무상교복으로 성남 시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이 시장이다. 염 시장은 50년 숙원인 비행장문제를 풀겠다며 뛰고, 이 시장은 최대 현안인 구도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뛴다. 비행장 풀리고 1공단 정리되면 얼마나 좋겠나. 이런 경쟁이면 백번 겨뤄도 좋다.

계속 지켜 볼만한 ‘염태영ㆍ이재명 戰’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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