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각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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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서(覺書)는 약속을 지키겠다는 내용을 적은 문서다. 법률행위나 약속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며, 각서를 쓴 사람에게 귀책사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지고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하는 양식이다. ‘민법’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지급 및 청구와 관련한 쌍방간의 합의서면도 각서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각서를 쓰게 된다. 재미로 써보는 사람도 있고, 심각한 문제로 쓰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젊은 연인들은 ‘커플각서’를 쓴다. 연인 외에 다른 남자(여자)를 탐내지 말기, 기념일ㆍ생일은 절대 잊지말고 챙기기, 싸울때 욕과 주먹질 하지않기, 칭찬과 대화 자주하기 등 연인끼리 지켜야 할 에티켓을 담는다. ‘부부각서’를 쓰는 사람도 있다. 부부간의 지켜야 할 내용을 담아 서약하는 것으로 도박을 하지 않겠다거나 가정에 충실하겠다라는 내용 등을 담는다. 이런 각서는 별 효력이 없는 가벼운 약속이다.

 

하지만 배우자의 부정이나 도박 등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경우의 각서라면 다르다. 특히 부부간에 이혼을 결정하고 작성하는 이혼합의각서는 위자료와 재산분할, 양육권 등을 명시하게 되는데 법적인 효력을 위해 공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요즘엔 부모와 자식 간에 효도계약서도 쓴다. 부모가 자식에게 집을 사주거나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에게 봉양 의무를 다하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을 담은 각서다. 지난 연말 대법원이 효도계약을 어긴 아들에게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이 60~70대들의 송년ㆍ신년 모임에서 화제가 되면서 이미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준 부모들까지 효도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적지않다. 민법상 자식에게 조건없이 증여한 재산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돌려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섣불리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 나중에 홀대받거나 버림받을 것을 우려한 부모들이 안전장치로 효도계약서 쓰기에 나선 것이다.

 

효도계약서의 기본 내용은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대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것이다. 각서에 들어가는 효도의 세부 내용은 각각 다르다. 

어떤 부모는 ‘며느리가 입에 맞는 음식을 차려야 한다’는 등의 내용도 요구한단다. 하지만 법적으로 해석이 모호한 조건을 달면 법적 다툼이 벌어졌을 때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부모 부양마저 계약으로 이뤄지는 것이 씁쓸하지만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하나의 사회현상이 됐다. 이게 우리 사회 자화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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