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가정방문과 변색된 사과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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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두(차승원 분)는 돈을 밝혔다. 촌지를 받다가 들통나 시골 학교로 쫓겨났다. 부임한 학교는 강원도 산골에 산내 분교다. 가난한 농촌 마을에 전교생은 5명뿐이다. 그래도 촌지 욕구는 멈추지 않았다. 생각해 낸 것이 가정 방문이다. 소석(이재응 분)이 집도 그래서 방문했다. 하지만 기대는 무너졌다. 다 쓰러져 가는 집이다. 엄마는 정신병 환자고, 아버지는 집을 나간 지 오래다. 희망이 사라진 김봉두는 사표를 쓰기로 한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어느 날. 김봉두 집 문틈에 봉투 하나가 꽂혀 있었다. ‘양소석’이라고 적혀 있고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소석이가 학교를 빠지면서 마련한 ‘촌지’다. 소석이네 집으로 달려갔다. 비에 젖은 채 라면을 끓여 먹는 소석이가 눈에 들어왔다. 김봉두가 회초리를 들었다. “누가 너 더러 이런 짓 하라고 했어” “선생님 잘 못했어요, 근데 가지 마세요”. 둘은 부둥켜 안았고, ‘봉투’ 김봉두는 진정한 스승으로 개과천선했다. 영화 ‘선생 김봉두’(2003년)다. ▶영화에서 가정 방문은 극단적인 두 모습으로 그려졌다. 하나는 촌지를 거둬들이는 수단이다. 도시 학교 시절 김봉두는 가정 방문과 술자리로 촌지를 거뒀다. 시골에서 생각해 낸 수금(收金) 방법도 가정 방문이다. 또 다른 모습은 교사와 학생을 이해와 사랑으로 연결하는 매개다. 엄마가 아프고 아버지가 가출한 소석이의 사정은 가정 방문으로 알았다. 3만원 촌지에 울게 한 것도 가정 방문이었다. 우리 현실 속에 비친 가정 방문도 이렇게 두 모습이다. ▶장기 결석하는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 교육부가 조사했더니 220명이나 됐다. 7명은 행방이 묘연하다. 그 중 한 명이 냉동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어느 날 학교에서 사라진 아이다. 당연히 찾아봤어야 했다. 하지만 가정 방문은 한 달이 넘어서야 이뤄졌다. 아버지는 “아이가 한 달쯤 뒤에 죽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어쩌면 그때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 냉동실에 갇힌 아이의 참혹한 영혼이었을지 모른다.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사랑. 이 사랑을 이 시대 선생님들에게 요구하는 건 과욕일까. ▶필자는 가난했다. 선생님의 방문에 엄마는 바빴다. 어렵게 준비한 촌지는 사과였다. 미리 깎아 두면 안 되는 데 그걸 모르셨던 모양이다. 빨갛다 못해 까맣게 변해 버린 사과가 대접 됐다. 그래도 선생님은 맛있게 드셨다. 그 뒤 필자에겐 엄마의 회초리가 날아들었다. 선생님이 하고 가신 폭로(?) 덕이었다. 그 폭로가 뭐였는지 이제 기억도 없고 물어볼 곳도 없다. 그래도 그 변색된 사과와 선생님 방문, 엄마 회초리가 있어 그나마 지금의 내가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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