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역지사지와 공감보다 먼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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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부가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 주유소 직원은 기름을 주유하는 동안 차의 앞 유리를 닦아주고, 기름이 다 들어갔다고 공손하게 말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은 듣지 않고, 앞 유리가 아직 더럽다며 한 번 더 닦아달라고 했다. 직원은 알았다며 앞 유리를 꼼꼼히 닦았다. 직원이 다시 다 닦았다고 말하자 남편은 짜증내며 “당신은 유리 닦는 법을 잘 모르나요? 한 번 더 닦아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때 아내가 갑자기 손을 내밀더니 남편의 안경을 벗겼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천으로 렌즈를 닦아 다시 씌어 주었다. 남편은 깨끗하게 잘 닦여진 유리창을 볼 수 있었고, 그제야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고 부끄러움에 어찌할 줄 몰랐다. 누구나 마음의 안경을 쓰고 살아간다. 남을 탓하기에 앞서 내 마음의 안경이 혹시 얼룩진 안경, 색안경은 아닌지 확인해 봐야 한다.

 

역지사지와 공감의 뜻은 약간 다르지만 그 공통점은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마치 내 것처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뜻은 좋지만 실천하기는 태산을 옮기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말이 역지사지와 공감이다.

 

가치관이나 입장, 이해관계가 팽팽히 대립할 때 사람들은 늘 서로에게 역지사지를 요구하지만 역지사지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공감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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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현재 그 일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덜 공감한다는 연구 결과에서 보는 것처럼 공감은 혈연, 인종, 국적, 유사성, 가치의 공유 등으로 형성된 집단의 경계, ‘내 편’의 울타리를 좀처럼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같은 사람은 아군이고 옳으며, 나와 다른 사람은 적군이고 틀렸다고 한다. 내가 옳고, 우리가 옳다. 사실과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편, 우리 편이 중요하다.

 

나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기술, 갈등의 해결,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역지사지의 확대, 공감의 향상을 핵심에 놓는 것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지는 않은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역지사지능력을 확대하고 공감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름답지만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가능하다.

 

정종민 여주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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