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0월 1일 미국 메도우랜즈 경기장. 축구 황제 펠레가 마지막 경기에 나섰다. 그의 명성만큼이나 세계가 주목했다. 전반전은 브라질 산토스 팀으로, 후반전은 미국 코스모스 팀으로 뛰었다. 후반 막판에 프리킥 찬스가 왔고 펠레가 마지막 골을 넣었다. 전매특허인 오른발 깎아 차기(일명 바나나 킥)였다. 경기는 거기서 끝났다. 펠레가 역사 속 축구 황제로 비켜서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는 의식 있는 체육인으로 살았다. 당시 브라질 축구계의 부정부패는 극에 달했다. 그런 모국에서 펠레가 찾은 길은 체육계 개혁이었다. 개인적 노력이 한계에 부딪히자 정권 교체라는 험지로 뛰어들었다. 그것만이 근본적 처방이라는 결론에서다. 신변 위험을 무릅쓰고 야당을 지지했다. 결국, 카르도수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이듬해 펠레가 체육 장관에 취임했다. 은퇴한 지 18년 되던 1995년이다. ▶브라질 최초의 흑인 장관이다. 많은 언론이 그의 정치 미래를 예상했다. 대통령에 출마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그가 밝힌 취임 일성은 이랬다. “정계 진출을 위한 발판이 아니다. 스포츠를 활성화시킨다는 순수한 뜻에 대통령 요청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그는 부패를 단죄하는 일명 ‘펠레법’을 만들었다. 그리곤 미련 없이 떠났다. 그런 펠레를 세계인은 여전히 축구 황제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의 ‘태권도 황제’ 문대성은 많이 다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영웅이다. 2m의 거구를 혼절시키며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그 해 말 은퇴했다. 교수도 했고, 방송 해설가도 했고, CF 모델도 했다. 국제올림픽 위원회(IOC) 위원에도 선임됐다. 그러던 문대성이 은퇴 8년 만에 정치에 뛰어들었다. 돌아보면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이다. 등원도 하기 전에 만신창이가 됐다. 박사 논문 표절이 드러났다. 탈당과 복당으로 웃음거리가 됐다. 그리고 올해 불출마 번복으로 또 한 번 스타일을 구겼다. 대한민국의 태권도 영웅은 그렇게 정치로 망가졌다. ▶그 정치가 이번엔 김연아를 넘본다. 새누리당 쪽에서 의사 타진을 했다. 본인이 거부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정치란 게 원래 한 치 앞도 보여주지 않는다.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걱정들이 많다. ‘김연아까지 망치려고…’. 피겨 불모지 한국에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김연아다.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언제나 통쾌함을 선사하던 김연아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평창 올림픽 유치 필요성을 설명하던 김연아다. 그 김연아가 혹시 망가질까 봐 많은 이들이 걱정한다. 하여튼 한국 정치는 스포츠 스타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한 번 쓰고 팽개칠 거면서 말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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