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 냉장고 냉동실 문을 열었다.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일로 남은 명절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서다. 툭 하고 검은 비닐 뭉치 하나가 떨어졌다. 더는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신호다. 냉동실 안은 이미 포화상태다. 명절 음식이 많이 남았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하는 수 없이 냉동실 정리를 시작했다. 좁은 공간에 이렇게 많은 것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의아할 만큼 온갖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투명 비닐 팩에 담긴 건 그래도 내용물을 알 수 있어 정리가 쉽다. 그런데 검은 비닐은 도통 열어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지난 추석에 먹다 남은 것으로 보이는 녹두전이며 쇠고기 적은 그래도 양호하다. 가래떡에 얼린 만두며 잡채는 지난 설 것으로 보인다. 밥 덩이도 있다. 삼겹살과 생선은 이미 누렇게 변색하는 중이다. 수능 잘 보라며 지인들이 건넨 것으로 짐작되는 찹쌀떡은 수년 전 큰딸 것으로 보인다.
▶냉동실을 차지하는 것 중에는 명절을 보내고 남은 음식이 상당수다.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만든 음식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것이다. 명절 연휴 내내 먹었으니 질릴 법도 하다. 버리자니 아깝고 만든 수고까지 생각나 임시방편으로 냉동실에 넣어둔 게 해를 넘긴 것이다. 보관 상태도 허술하다. 금방 먹을 요량에 비닐봉지에 대충 담아 놓았으니 상태가 좋을 리 없다.
▶쇠고기 등 육류와 생선은 냉동실 보관이 가능하다. 단 장기간 보관할 때는 랩으로 밀착 포장하거나 진공 포장해야 한다. 전은 냉장보관하면 수분이 빠져나가 딱딱해지고 냄새가 나서 버리게 된다. 지퍼백이나 밀폐용기에 담아 냉동보관하되 열흘을 넘기지 않는 게 좋다. 나물은 따로따로 담아 냉장 보관해야 각각의 맛을 유지할 수 있는데다 상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보관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좋은 건 빨리 먹는 것이다. 우선, 전부터 없애보자. 남은 쇠고기로 육수를 내어 각종 전과 양파, 청양고추 등을 넣어 끓이면 훌륭한 전골요리가 된다. 인터넷엔 주부들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명절 음식을 활용한 다양한 요리법들이 나와 있다. 이번 주말엔 명절 음식을 활용한 요리로 꽉 찬 냉장고부터 비워보자. 비워야만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
박정임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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