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데이트 폭력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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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인간의 짓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터졌다. 7살 아들을 때려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해 3년 넘게 냉장고에 유기한 사건,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한뒤 미라 상태가 될때까지 방치한 사건은 부모에 의해 저질러진 흉악 범죄로 온 국민을 경악케 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폭력이 넘쳐난다. 죽음까지 부르는 아동폭력이 집안에서 은밀하게 일어나는가 하면, 어린이집에서의 아동학대도 자주 목격된다. 어린 나이에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은 청소년이 돼 학교폭력과 연계되고, 장년이 되면 군대나 가정, 직장에서 폭력을 재생산한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것이다.

 

최근엔 연인들 사이의 데이트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다. 연인을 4시간 넘게 감금하고 폭행한 의학전문대학원생이나, 헤어지자는 연인에게 염산을 뿌린 남자 친구, 애인을 살해한 뒤에 암매장한 남성까지, 사랑한다는 사람으로부터 희생 당하고 폭력 당한 이들이 너무 많다. 피해자들은 어쩌면 ‘널 때리는 건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폭력이고 중증 병이다.

 

최근 5년간 데이트폭력으로 인한 사망 사건만 645건 일어났다. 폭력 사건은 매년 7천여건씩 발생한다. 지난해에만 모두 7천692건 발생했다. 살인ㆍ상해ㆍ폭행ㆍ강간ㆍ강제추행ㆍ스토킹 등 범행 종류도 다양하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05년부터 10년간 데이트폭력을 저지른 7만1천5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공개한 결과에 따르면 전과자 비율이 76.6%에 달했다. 데이트폭력은 재범률이 높은 만큼 연인의 과거 폭력 전과를 상대방이 조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에선 ‘클레어법’을 도입해 데이트폭력을 근절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클레어 우드라는 영국 여성이 인터넷 연애사이트에서 만난 남자친구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남자친구는 과거에도 자신의 연인을 폭행하고 학대한 전과가 있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돼 영국은 2012년부터 경찰이 연인의 폭력 위험에 둘러싸인 여성들에게 상대방의 폭력 전과를 공개해 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클레어법은, 교제하는 상대방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법이다.

 

데이트폭력 문제가 심각하자 경찰청이 나서 전국 251개 경찰서에 ‘연인간 폭력 근절 테스크포스’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더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르는걸 용납해선 안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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