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반공통일관·反반공통일관

1954년 7월이다. 휴전되고 꼭 1년이다. 나라는 여전히 폐허였다.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 미국에 갔다. 이발 좀 하라고 했지만 마다했다. “돈 얻으러 가는데 깔끔하면 누가 돈 주겠나.” 7월 28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 섰다. “소련이 수소탄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전에 미국 공군으로 하여금 소련의 생산 중심지를 파괴해야 한다.” 주제도 모르는 연설일 수 있었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나라의 대통령이다. 누구더러 누구를 공격하라는 것인가.

하지만, 이승만에겐 필요한 발언이었다. 그날 연설의 논리는 이랬다. ‘소련이 급성장하고 있다. 미국이 대비해야 한다. 그 행동을 시작할 곳은 극동이다. 한국이 충분한 인적 자원을 제공하겠다. 미국은 현금 현물 지원만 해 주면 된다.’ 연설에서 대통령은 ‘우리(We)’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미국과 한국을 반공이라는 매개로 묶었다. 훗날 혹자들은 이날의 연설을 ‘반공의 성전(聖戰)에 한국을 바치겠다는 반공 세일즈였다’고 정리했다.

그렇게 국부(國父)에서 시작된 반공은 오래갔다. 5ㆍ16의 혁명 공약도 반공이었다. 반공으론 성에 안 차는 세상으로 변했다. 북한을 없애자는 멸공(滅共)통일관이 국민에게 교육됐다. 전두환 정권은 더 극단으로 갔다. “우리나라 국시(國是)는 반공보다 통일이어야 한다”. 지금 같으면 ‘깜’도 안 되는 연설이다. 그런데 이 연설문을 준비한 유성환의원에 쇠고랑이 채워졌다. 국부에서 군부(軍部)까지, 우리의 통일관은 반공통일이었다.

그 피와 사상이 박근혜 정부로 승계됐다. 그리고 이 정부를 보수(保守)가 받치고 있다. 이들에게 북핵은 청천벽력일 수 밖에 없다. 먹어야 할 적(敵)에게 먹힐 판이다. 뭐라도 해야 한다. 3대 세습 정권을 향해 전단도 날려야 하고, 김정은에 들어갈 돈도 씨를 말려야 한다. 북한의 명줄을 이어주는 개성공단 가동은 가당치도 않은 소리다. 가동중단 결정은 진작 했어야 할 만시지탄이다. 이 집단이 ‘개성공단 중단 찬성 60%’로 뭉쳤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대통령이 전혀 다른 통일관을 정식화했다. 6ㆍ15 남북 공동성명 2항에 의미를 정리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Confederation)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Soft Federation)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구체적 행동은 햇볕정책이 맡았다. 반백년 가까이 국시로 모셔졌던 반공통일이 한순간 퇴물이 됐다.

좌익(左翼) 전력자의 사위가 대통령이 됐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꿨다. 반공통일관에 맞섰다가 20년간 징역 산 신영복 교수가 대학 강단으로 돌아왔다. 그의 혼(魂)이 담긴 서체 ‘처음처럼’이 국민 소주가 됐다. 국민 누구도 ‘좌빨 소주 안 먹겠다’며 ‘참이슬’을 찾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백년짜리 반공통일관은 10년 간 반(反)반공통일관으로 대치됐다.

그 DJㆍMH의 계승자들이 지금의 야권(野圈)이다. 진보(進步)가 그들을 받치고 있다. 이들에게 북핵은 ‘이해해야 할 자위수단’일 수도 있다. ‘선거에 조심하라’는 김종인 대표의 경고 때문에 그 말을 아끼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개성공단 사태가 터졌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의 감정적 조치라고 비난한다. 선거를 앞둔 신(新) 북풍이라고 공격한다.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따진다. 이 집단 역시 ‘개성공단 중단 반대 40%’로 뭉쳤다.

개성공단 중단 찬성 60%, 개성공단 중단 반대 40%. 결국엔 반공통일관 60%, 반반공통일관 40%다. 2016년 대한민국에 통일관을 대입시켜 산출해 낸 수치다. 이 ‘60대 40’이 남들은 이해 못 할 한국을 만들었다. 핵무기가 터지고 미사일이 날아가도 한국은 다르다. 미국 정치는 만장일치지만 한국 정치는 갑론을박이다. 1만㎞ 밖 미국은 공포에 떨지만 40㎞ 안 서울은 표(票)에 떤다. 미국은 돈줄을 막았지만 한국은 햇볕을 더 주자고 한다.

이쯤 되면 앞날이 보인다. 안보(安保) 앞에서 단결하자? 대통령도 얘기하고 언론도 주장한다. 하지만, 안 될 것 같다. 계속 삐걱거릴 것 같다. ‘종북 좌파 통일관’ ‘꼴통 보수 통일관’이라고 욕하며 벌어진 틈새가 너무 크다. 거기에 합류한 여론의 덩치가 너무 거대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난 10년보다도 훨씬 긴 시간을 ‘한 지붕 두 통일관’으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그 기나긴 통일관 충돌의 시작이 지금의 개성공단 논란일지 모른다.

한반도(韓半島)! 이 작디 작은 땅에 통일관만 3개다. 반공(反共)통일관, 반반공(反反共)통일관, 그리고 적화(赤化)통일관. 앞의 두 개로 남(南)은 쪼개져 있고, 뒤의 하나로 북(北)은 뭉쳐져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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